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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ND연구소 연구노트>

1. MND연구소의 우회적 유사 전략, 페이크 다큐멘터리, 일루젼 그리고 예술의 시작

2. 뇌세포의 가소성(plasticity)과 조형성(plasticity)

3. 코호트와 창작과정에 대한 고찰

4. 치매와 진화론

5. [위대한 예술가 = 요절] 공식에 대한 반론

6. 기억을 잃어버리는 질환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프랑스의 장기 퇴행성뇌신경질환대책(PMND)

8. 디지털치매의 역설

9. 예술의 일상화와 일상의 예술화

 
 

 

[MND연구소 설립 정신/비전/운영철학 부분] 복사골갤러리, 2015
 
 

1. MND연구소의 우회적 유사 전략, 페이크 다큐멘터리, 일루젼 그리고 예술의 시작

‘예술은 눈속임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시각미술에서 눈속임의 역사는 회화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모방 또는 재현으로부터 출발했던 회화의 역사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이 내린 기막힌 눈속임 재주를 가진 전설적 화가들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우선, 우리나라에는 솔거라는 신라시대 화가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에 새들이 앉으려다가 부딪쳐 떨어졌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서양에도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 화가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전설적인 그림 대결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는 너무나 실물 같아서 새들이 몰려들어 쪼려고 했다. 이에 고무된 제욱시스가 라이벌 화가인 파라시오스에게 그림을 가린 휘장을 걷고 그에게 그림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휘장은 실물이 아닌 파라시오스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이 라이벌 간의 대결은 화가의 눈을 속인 파라시오스가 새의 눈을 속인 제욱시스를 꺾고 완승을 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사실 2차원의 평면을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회화는 모두 이 눈속임(일루전)과 관련되어 있다. 모두 동일한 평면 위의 그림 속 대상물들이 서로 다른 거리감을 만들어 내는 원근법은 회화의 고전적인 기법이며, 아직도 이러한 기법은 유효하다.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다른 예술 분야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예술적 유희는 창작에서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매우 주요한 요소이다. 눈속임 또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픽션을 근간으로 하는 예술 분야는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영화 등 다양하다. 예술의 변천사가 바로 눈속임 방식의 변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눈속임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속성을 가진 창작의 근원인 것이다.

영화 분야에도 허구의 스토리로 구성되었지만, 사실성을 근간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관객을 실제 사건으로 인식하게 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속임수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이 페이크다큐멘터리의 성공 여부는 관객이 허구를 실제처럼 인식하도록 얼마나 그럴싸하게 현실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인공조명을 배제하고 소형 카메라만을 사용한다든지 인터뷰 장면에서도 실재성을 높이기 위해 모자이크 처리나 음성변조를 사용하기도 한다. 가짜를 진짜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솔거, 제욱시스, 파라시오스의 그림에 나타나는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MND연구소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연구소로 예술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개념적으로 설립되었으며, 회화에서의 일루전이나 영화의 페이크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눈속임 전략 자체를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전면적으로 표방한다. 실제 연구소가 수행할 것 같은 프로세스와 유사한 프로세스를 진행하며, 실제와 유사 프로세스, 진지함과 유희, 목적성과 탈목적성, 예술과 일상, 과거 예술이었던 영역과 동시대 예술에서 예술로 정의되는 영역 사이의 경계를 진자(pendulum)처럼 오간다. 이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는 치매 예방이라는 확실한 목적하에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치매 예방을 위해 상상할 수 있는 유사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제시하는 결과물과 연구 프로세스가 치매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없는 사실들을 무작위로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이 연구소에서 제시한 솔루션의 상당수는 치매 예방 및 치료와 관련된 의학적 근거로부터 출발하며, 어쩌면 미래 과학기술로 실현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MND연구소의 연구 성과물은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허구이며,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허구의 유희라고 치부하기에는 치매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근거로 하고 있다. MND연구소의 이러한 ‘우회적 유사전략’은 바로, 이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동력인 동시에 이 프로젝트 그 자체이기도 하다.


2. 뇌세포의 가소성(plasticity)과 조형성(plasticity)

플라스틱은 가열이나 가압을 통해 원하는 형태로 성형이 가능한 합성수지 물질을 가리킨다. 이러한 유연한 성질을 이용해 거의 모든 형태를 손쉽게 만들 수 있기에 플라스틱의 발명은 산업발전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플라스틱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가소성(plasticity)에 있으며, 이 용어는 물리학, 의학, 미술 분야에도 두루 사용된다. 특히 뇌 신경 분야에서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뇌 부위 중에 손상된 부분이 발생하면 이를 대신하여 다른 쪽 부분이 이 기능을 대신하는 성질을 가리킨다. 플라스틱과 같은 이 유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뇌는 학습이나 재활훈련에 따라 얼마든지 기능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가소성이 죽은 뇌세포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출생 이후 뇌세포는 새롭게 생성되지는 않지만, 죽은 세포 옆에서 빈둥대고 놀고 있던 세포가 일정한 자극을 받으면 죽은 세포를 대신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는 뇌세포의 전기적 신호를 신경전달물질로 전환하여 전달하는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가 죽은 세포를 대신하기 위해 강화되기 때문이다. 특정 감각 기관의 장애가 발생하면 다른 기관이 강화되는 것도 뇌의 가소성과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의학 분야에서 가소성 또는 플라스틱 성질이라 지칭되는 이 ‘plasticity’는 미술 분야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다. 물론 미술 분야에서는 가소성 대신 일반적으로 조형성(plasticity)이라 불리지만 플라스틱 같은 유연성을 활용하여 형태를 구성한다는 관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재료를 사용하여 공간에 형태를 부여하는 시각예술 분야를 통칭할 때, 영어로는 ‘plastic art’이고 프랑스어로는 ‘Arts Plastiques’라고 한다. 재료가 가진 일정한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시켜 공간을 재구성하는 플라스틱 성질은 하잖은 재료를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킨다. 이 관점에서 보면, 플라스틱 성질이 상실된 물질은 예술의 반열에 입성할 수 없으며, 그냥 평범한 물건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플라스틱 성질을 활용하여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예술가의 두뇌 활동으로 인한 결과이다.

좀 더 비약하여 생각하면, ‘예술 창작을 위한 특별한 감각을 발달시켜 주는 것도 뇌의 가소성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태어날 때 뇌의 상태는 구입 초기의 컴퓨터처럼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 기능을 수행하는 기본 프로그램만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본 프로그램 중에는 예술창작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물론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외부 환경에 따라 뇌는 많은 자극에 노출하게 되며, 이에 적응하기 위해 바로 뇌의 가소성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구매 후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특정 프로그램들을 설치하고 필요한 파일들을 생성하는 것처럼, 두뇌 사용자(?)의 고유 뇌 활동에 따라 이 위대한 가소성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예술 분야에 대한 특별한 감각도 발달시켜 나간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고 두뇌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기가 되면 이미 완성되어 더는 발전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뇌가 환경 및 자극요인의 변화에 따라 지속해서 변화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하는 것도 뇌의 가소성 덕분이다.

엄청난 속도로 진보하는 컴퓨터 분야의 기술발전으로도 아직 인간의 두뇌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가소성 때문이다. 아무리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도 기본적으로는 일정한 연산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예를 들어, 계산하고 기억하는 능력처럼 일정한 규칙을 가진 두뇌 기능은 컴퓨터가 인간보다 훨씬 우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소성은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창작활동처럼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며, 일정한 규칙도 없는 비선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가소성은 하나의 가능성이며 현재진행형이다. 수많은 환경 요인의 자극에 따라 두뇌 특정 부분의 기능이 발달하기도 하고, 미세한 차이로 잠재상태에 머물다 일명 뇌사로 표현되는 사람의 죽음과 함께 채 발현되지도 못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경험하게 되는 환경적 요인과 이를 받아들이는 두뇌활동은 다른 사람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고 이 사이에 일정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인공지능은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오감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하루 동안의 환경요인을 보수적으로 수치화하여 1000이라고 산정한다면, 이렇게 입력된 1000이란 정보를 전기신호의 형태로 전달하는 약 1000억 개의 뇌신경세포(뉴런) 중 일부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이뿐 아니라 각 뉴런 사이에 존재하는 1000조 개의 시냅스의 네트워크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를 감안하면 아무리 똑똑한 슈퍼컴퓨터라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두뇌활동이 일정한 규칙 하에 작동된다면, 완벽한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것은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산술적인 접근 및 연산을 가능하게 하려면 대상의 구조가 어떠한 형태로든 연결된 선형적인 경우여야 하지만, 본질적으로 뉴런 사이의 신호전달을 위한 접합부위인 시냅스는 물리적으로 붙어 있지 않다. 이러한 공간이 바로 창조적인 가소성이 발현되는 지점이며, 완벽한 산술적인 예측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요인이다. 이는 아무리 천재적인 해커라도 물리적으로 인터넷망에서 분리된 컴퓨터에 침투할 수 없는 이치와 유사하다.

재료학적 관점에서 가소성의 특성 중에 하나는 일정 형태를 형성하기 전까지는 유동적이고 유연하지만, 가열이나 가압을 통해 일단 특정 형태를 형성하게 되면 이 형태는 지속해서 유지되기에 더는 변화되지 않는다. 뇌의 가소성도 마찬가지로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일단 강화된 뇌의 기능은 열이 식은 플라스틱처럼 고정되어 지속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치매에 걸리기 전에 지속적인 자극을 통해 강화되었던 특정 기능은 치매 증상이 발현된 후에도 다른 기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유지된다고 한다. 두뇌의 기능은 두뇌의 용량이나 뇌신경세포 개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뇌의 가소성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이 가소성의 또 다른 특성은 예술 분야에서의 플라스틱 성질처럼 창의적이며 독창적이라는 점이다. 두뇌에 비슷한 정도의 장애를 입은 환자들이 동일한 뇌 기능 강화 훈련이나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에도 나타나는 효과는 판이할 수 있다. 이 뇌의 가소성은 과학적 영역에서 일정 부분 예측할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산술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이다. 먼 훗날, 10년 후의 일기예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질까? 아직은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완벽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뇌의 가소성에 대한 비밀이 완전히 봉인 해제되는 날 인류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본질적인 의문인 창조와 진화에 대한 비밀도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에도 나타나는 효과는 판이할 수 있다. 이 뇌의 가소성은 과학적 영역에서 일정 부분 예측할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산술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이다. 먼 훗날, 10년 후의 일기예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질까? 아직은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완벽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뇌의 가소성에 대한 비밀이 완전히 봉인 해제되는 날 인류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본질적인 의문인 창조와 진화에 대한 비밀도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3. 코호트와 창작과정에 대한 고찰

올해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라고도 불리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이 유행되면서 코호트(Cohort) 격리라는 생소한 전문용어가 각종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 영향으로 코호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들도 코호트를 언급할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감염 질환을 막기 위해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시설을 통째로 격리하는 조치를 이르는 이 코호트 격리는 원래 코호트 연구로부터 유래되었다. 코호트 연구란 특정 요인에 노출된 집단을 장기간 추적 조사하는 역학적 연구의 한 방법이며, 질병의 원인 등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원래 코호트라는 단어는 로마제국의 군대 편성단위를 이르는 말로 병사 300~600명을 1 코호트로 구성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군대용어였던 코호트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통계용어로 정착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코호트 연구 대상이 질병인 경우 질병 코호트라고 지칭하는데, 질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특정 질병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실험적 연구방법과 동물실험이라는 간접적인 접근방법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질병 발병 요인에 노출된 특정 대상군의 장기간에 걸친 직접적인 추적조사만큼 신뢰성을 주기 힘들다. 그래서 혁신적인 실험 방법이 개발되어도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코호트 연구는 여전히 유효할뿐더러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노령인구의 증가와 함께 주요질환으로 등극한 치매에 대한 코호트 연구 역시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더군다나 치매는 아직 백신이나 원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매환자 집단 또는 치매 고위험군을 장기간 추적조사 하는 코호트 연구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코호트 연구는 때에 따라 수십 년 또는 전체 생애주기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에 특정 증상이 발현되기 이전의 일상적인 식생활 및 생활태도와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보다 객관성 있게 논증할 수 있게 된다. 원인을 알아야 그에 대한 대처 방법도 개발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간접적인 자료에 의존하는 방식의 초보적 코호트 분석을 넘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유의한 연구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하고 큰 규모의 치매 코호트 대상군을 설정하고 생체시료를 포함한 각 코호트 참여자의 상세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여 암보다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되어 가는 치매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코호트 연구는 대상자들의 참여가 전제돼야 하는 연구이기에 전 국민이 ‘코호트’하면 ‘코호트 격리’보다는 ‘코호트 연구’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이 분야의 저변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코호트는 한 집단 군의 생활습관 등을 수십 년간 장기적으로 관찰하는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동시에 예술적 프로세스를 담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기관이나 집단이 수행하는 경우 하나의 업무 또는 한정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을 예술가 개인 및 집단이 수행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사회공동체가 인정하는 특정 목적을 가진 추적조사는 아니겠지만, 한 예술가가 특정 대상을 평생 편집적으로 추적하여 자신의 창작활동 근간으로 삼는 경우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특정 지역의 풍경이나 특정 인물들을 수십 년간 관찰하며 화폭에 담는 화가들도 있다. 예를 들어 세잔 같은 화가는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평범한 돌산인 생 빅토와르 산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15년간 집요하게 화폭에 담았다. 세잔에게 있어 생 빅토와르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코호트와 같은 것이었다. 동시대미술로 넘어오면서 개념미술 또는 랜드아트 계열의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대상을 화폭에 기록하는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라 진짜 연구원이나 고고학자처럼 특정 지형이나 사막, 폐광지대를 직접 찾아다니며 장기간 특정 대상 지역의 변화를 리서치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 자체를 창작활동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들의 추적조사 목적이 예술창작을 위한 것이라면, 질병 코호트 연구는 어찌 보면 병인 규명이라는 전혀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각자 설정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세스는 서로 많이 닮아 있는 것처럼 MND연구소도 코호트 연구를 근간으로 창작활동의 또 다른 접근 경로를 제시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4. 치매와 진화론

원시인도 치매에 걸렸을까? 글쎄,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비교적 질병에 관한 기록이 잘 남아 있는 중세나 근세로 시선을 옮겨서 살펴보자. 물론, 고대 문헌에도 치매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고대는 물론이고 중세나 근세에도 현대와 동일한 개념으로 치매를 인식하고 있지 않았으며,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 정도로만 인식했다. ‘미침’ 또는 ‘정신이상’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된 치매(dementia)라는 용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과거에는 치매를 일반적인 정신병과 혼동하여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Alois Alzheimer) 박사가 당시 정신질환으로 판단되던 한 환자의 사망 후에 이 환자의 뇌를 해부하던 중 다른 정신질환 환자의 뇌와는 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하면서 이 질환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걸 보면, 인류가 과학적으로 치매 증상을 규명하기 시작한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사실은 과거에는 치매가 그리 흔한 질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고대 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치매의 역사는 길지만, 평균수명이 현대의 절반도 되지 않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치매 유전자가 발현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점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생존에 부적합한 대부분 유전자는 진화론적 선택과정에서 도태되어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컴퓨터로 치면 악성코드 같은 이 골치 아픈 치매 유전자가 수백 만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유전자가 인류의 생존을 전혀 위협하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이 유전자가 수만 년 전부터 극성을 부렸다면 인체의 유전자 방어시스템에서 이를 제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을 것이고, 이로 인해 이 못된 유전자는 도태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백만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치매 유전자가 기지개를 켜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때는 바야흐로 치매 유전자가 활동하기 딱 좋은 고령화 시대가 아닌가?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의 약 10% 정도가 치매 환자라는 통계가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다른 나라의 치매 유병률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 유전자 방어시스템의 스위치를 켜고 이 악성코드를 삭제하면 되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진화론적 선택과정은 시간, 그것도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여러 세대에 거쳐 조금씩 변화를 축적하다가 집단 전체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이 진화 메커니즘의 속성을 감안하면 이 치매라는 악성코드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최소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혹시 운이 좋아 이 치매 유전자를 조기에 몰아낼 수 있더라도 최소한 현재 지구 상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혜택을 볼 확률은 거의 없다. 진화의 시계는 인간이 아무리 급하다고 외쳐봤자 자신의 페이스를 가속화해 더 빨리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현재 고령 인구 증가 속도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 고령화가 진행되면 치매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상 무서운 질병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암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추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치매에 대한 대비책을 서두르고 있으며, 이를 실행하는 데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치매가 단지 환자나 그 가족에게 닥친 불행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전은 너무나 가파른 데 비해 진화론적 메커니즘에 따른 방어체제의 구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도 이에 대한 신속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MND연구소의 등장 배경이다. 차후에는 MND연구소 같은 짝퉁 연구소가 아닌 고령화와 치매를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국가 차원의 MND연구소가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MND연구소는 심각한 사회적 질환인 치매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그 자체를 지시하는 일종의 기호로서 작용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5. [위대한 예술가 = 요절] 공식에 대한 반론

- 손을 쓰는 작업과 지적인 창작활동이 건강 및 인간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대중은 위대한 예술가의 요절에 애통한다. 동시에 대중은 위대한 예술가의 요절에 환호한다. 대중은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과 다른 비극적이며 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을 통해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반 고흐가 아닐까 싶다. 살아생전 작품 한 번 제대로 팔아보지 못하고 유명세하고도 거리가 멀었던 그를 사후에 일약 스타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작품성 이외에 다른 요인도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정신질환, 궁핍한 삶, 우울한 애정 관계, 동료 화가 고갱과의 관계에서 벌어졌던 엽기적인 자해행위,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권총 자살시도와 그로 인해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이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예술가의 삶 그 자체이다.

고흐처럼 요절한 예술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예술가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려 하지 않는다. 몇몇 사례만 보고 전체를 일반화시키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를 신뢰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만 선택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자신이 확인한 몇몇 사례를 근거로 위대한 예술가의 단명은 당연한 사실처럼 확신하게 된다. 재능 많은 젊은 천재 예술가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 익숙한 것은 대부분 팩트를 근거로 하기보다는 픽션을 근거로 하는 소설, 영화,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이러한 매체 속에 등장하는 예술가는 거의 예외 없이 일반인과 구별되는 괴팍한 성격과 무질서한 생활습관을 가진 장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그려진다. 어려서부터 이런 예술가상에 익숙하던 차에 어떠한 계기를 통해 요절한 예술가 한두 명을 확인하게 되면, 모든 천재 예술가는 요절한다는 확신은 완성된다.

필자가 우연히 옛날 미술가들의 인명록을 뒤적이다 의외로 장수한 미술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세와 근대 일반인들의 평균 수명이 40세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60세 이상의 화가나 조각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전체 미술가 수에 비하면 워낙 인명록에서 확인한 샘플 규모가 적아 확정적으로 이 시대 미술가들의 평균 수명을 예단할 수는 없다. 또한, 인명록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는 이야기고, 조기 사망한 미술가들은 애당초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통계자료를 검색했지만, 옛날 미술가들의 평균수명에 대한 통계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웹서핑을 통해 검색된 유럽 미술가 중에 14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출생한 미술가를 세기 별로 20명씩 총 120명을 무작위 추출하여 평균 수명을 추산한 결과 놀랍게도 65.61세가 나왔다.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미술가 중에 각각 37세와 39세에 요절한 라파엘로나 카라바지오 같이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미술가는 장수를 누렸다. 특히, 유명한 르네상스기의 미술가 중에 미켈란젤로는 89세, 티치아노 88세, 클로드 로랭 82세 등 현대인의 평균수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게 장수하였다. 대중들이 생각하기에 다재다능하여 분명 요절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기본 67세까지는 살았다. 근현대로 넘어와서 앵그르 89세, 모네 86세, 피카소 93세, 호앙 미로 90세 등 장수의 정점을 찍었다. 이는 당시 평균수명을 비교하면 매우 희귀한 경우다.

물론 120명을 대상으로 집계한 평균수명을 가지고 전체 미술가의 수명을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단명한다는 통설은 어느 정도 반박할 수 있다. 아직은 통계자료로서의 유의성을 인정받을 만큼 많은 미술가의 평균수명에 대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서 가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일, 무작위 추출한 120명 예술가 집단에 대한 통계와 유사한 결과가 더 큰 예술가 군을 대상으로 도출된다면, 그 원인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손을 많이 쓰는 작업과 지적인 창작활동이 건강 및 인간 수명에 미치는 인과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도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손을 많이 사용하는 활동과 두뇌 활성화와의 인과관계는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 노인 의료를 담당해 온 쇼난장수원 원장인 프레디 마츠가와 박사는 자신의 저서 “치매 걸리는 사람, 치매에 걸리지 않는 사람”에서 예술가는 가장 치매에 걸리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특정하고 있다. 물론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무조건 장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뇌가 됐건, 신체가 됐건 왕성하게 활동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창의적인 두뇌활동과 치매와의 인과관계는 분명히 성립된다. 이는 뇌 가소성을 통해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프레디 마츠가와 박사가 치매 고위험군에 포함시킨 집단은 하나같이 창의적인 업무능력이 그다지 필요 없는 직업군과 관련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창의적인 활동을 직업적으로 하고 거기다 뇌 자극에 좋은 손을 많이 사용하는 미술가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우월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예술가가 불타는 창작열을 감당하지 못해 그의 생명까지 태워버리기를 기대하는 대중들의 열망은 안타깝게도 소설 속에서나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6. 기억을 잃어버리는 질환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인간은 삶을 통해 기억을 생성하고 이 기억에 의존하여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은 어느 날 저녁 홍차와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 맛에서 어려서 살던 고장인 콩브레 전체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때는 자신의 몸 전체를 휘감는 이 기묘한 느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후에 게르망토 대공의 파티에 가다가 이와 유사한 느낌에 한번 휩싸이게 된다. 이 때 느낌의 매개체는 포석, 숟가락 소리, 고서의 느낌 등이다. 정원에서 발에 부딪힌 포석의 느낌, 하인이 내준 숟가락의 부딪치는 소리, 도서실에서 넘겨 보던 고서의 책장 느낌 등으로 인해 주인공은 결국 과거의 기억 전체를 그대로 다시 떠올리게 되고,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인용문을 근거로 하는 프루스트현상은 후각이나 촉각을 통해 무의지적으로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 프루스트현상을 거론할 정도로 잘 알려진 현상이다. 사실, 프루스트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기억을 떠올리는 작용과 이 프루스트현상은 같은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유사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낙엽 태우는 냄새를 많으면서 불현듯 어떠한 기억이나 장면을 떠올린다든지 하는 경험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프루스트가 이야기하는 무의지적 기억은 의식적으로 떠올린 파편화된 희미한 기억과는 거리가 있으며, 후각이나 촉각의 우발적 자극을 통해 전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의지적으로 불현듯 떠오르는 생생하고 선명한 총체적 기억을 의미한다. 이 무의지적 기억은 시간적 거리감을 한 번에 소멸시키고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듯 기억과 연관된 행위가 발생하였던 시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프루스트현상이 촉발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 매개체는 각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마르셀에게는 마들렌과 포석 등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프루스트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대다수 후각에 의한 기억의 소생을 언급하지만, 사실 프루스트는 홍차를 머금고 마들렌을 씹을 때 느껴지는 식감, 게르망토 대공의 정원에서 포석이 발에 걸려 균형을 잃었을 때의 느낌, 숟가락이 달그랑거리는 소리, 책장이 넘어가는 느낌 등 다양한 감각기관에 의존한 기억 되살리기를 제시한다.

기억이라는 작용은 결코 이 기억의 원본이 되는 행위를 선행할 수 없지만, 이 원본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행위가 발생하는 시점은 찰나적으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창 밖의 풍경처럼 생성되는 동시에 소멸하며 또 다른 풍경으로의 전환을 낳는 시점이다. 무언가를 보고 인지하는 순간에 이 인지한 순간은 과거 시점에 위치한다. 엄밀한 의미로 현재 바로 그 순간을 정확하게 인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글이나 사진을 통해 그 당시의 실제 시간을 기록하기도 하며, 설사 이런 매체를 통해 기록하지 않았더라도 대뇌에 있는 해마라는 기억 보관소를 통해 자동 저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이 늘 다니던 길, 만나는 사람, 약속 시각 등을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기억의 저장고에 넣어 두었던 기억이 소멸하거나 있어도 도무지 찾지 못하게 된다면, 기억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존재인 우리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증상이 어쩌다 한 번 부정기적으로 나타나면 건망증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겠지만, 그 횟수가 거듭되고 그 증상이 심각해짐에 따라 자신의 가족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기억의 소멸로부터 세상과의 단절이 시작되는 치매 증상의 한가운데 서게 되는 것이다.

치매는 인지장애, 행동장애 등 복합적인 증상을 동반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자신이 평생 저장했던 기억이 서서히 지워지는 기억장애를 꼽을 수 있다. 치매 질환의 특이한 증상은 근접 과거에 대한 기억부터 소멸하기 시작하다가 맨 마지막 단계의 먼 과거 시점인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멸한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예로 제시하는 무의지적 기억의 소생도 예외 없이 먼 과거 시점의 기억이다. 마들렌을 매개체로 떠올렸던 순간도 주인공 마르셀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콩브레에 대한 추억이며, 게르망트네 저택의 포석에 걸려 균형을 잃는 순간 떠올렸던 기억 역시 오래전 어머니와 함께했던 베니스 여행과 관련된 것이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치매에 걸리기 전 해마에 저장했던 기억은 잘 재생되지만, 해마가 손상된 이후에는 기억장치 자체가 손상되어 기록이 근본적으로 보관되지 않았기에 근접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는 불충분한 점이 있다. 아직 해마가 건강한 일반인도 프루스트현상에 의해 떠올리는 기억은 상당수 가까운 과거가 아닌 먼 과거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개인적 경험이 발생한 시점에 당사자가 고통스럽거나 불편하게 인식했던 사실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한 기억으로 전환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과거 기억이 다 무의지적 기억 소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 뇌 속에 저장되었던 기억 중에 시간의 숙성 과정을 통해 선택된 기억만이 어떠한 매개체를 만나 복원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선택된 기억을 우연에 의존하여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는 시간에 희망하는 기억만을 복원하는 솔루션 개발은 MND연구소의 연구방향과 맥을 같이 한다. 우연에 의존하지 않고도 선택적으로 프루스트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의지적 기억복원프로그램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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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 들르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6년, p. 19



7. 프랑스의 장기 퇴행성뇌신경질환대책(PMND)

프랑스는 고령화에 따라 급증하는 치매에 대처하기 위해 2008년 2월 <2008-2012 알츠하이머 장기종합대책(Plan Alzheimer 2008-2012)>을 발표했고, 2013년 종합평가를 거친 후에 2014년에는 <2014-2019 퇴행성뇌신경질환 장기종합대책(Plan maladies neuro-degeneratives 2014-2019)>을 수립하고 추진 중이다. 이 장기종합대책은 치매와 그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및 환자가족의 삶의 질 개선, 치매에 대한 연구활동, 이 질환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연대라는 3가지 목표를 수립하고 이와 관련된 세부계획의 실행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되는 이 프로젝트는 치매와 직접 관련된 모든 사람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공동체 모두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국가전략이다. 이 장기대책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주축이 되어 수립한 행동계획과 민간 주도의 행동계획, 사회연대 차원의 행동계획이 상호 연계되고 촘촘히 맞물려 단 1명의 치매 환자도 이 사회안전망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2008-2012 알츠하이머 장기종합대책>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 질환을 다루었다면, <2014-2019 퇴행성뇌신경질환 장기종합대책>은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하여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루게릭병, 헌팅턴병)까지 그 범위를 더 확대하여 적용하였다. 현재, 프랑스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850,000명이고 그다음으로는 파킨슨병과 다발성경화증 환자가 각각 150,000명과 80,000명에 이른다. 프랑스 인구가 6천6백만 명 인걸 감안하면 치매 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비율은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식한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2014-2019 퇴행성뇌신경질환 장기종합대책>을 살펴보면 우선 전국적인 차원의 치매 환자 치료 및 돌봄서비스 체제를 구축하여 전 국민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를 위한 세부계획으로 환자가 병이 진행되기 전에 정확한 조기진단을 통해 종합적인 치료 방향을 설정하도록 하고 모든 환자가 질 높은 의료서비스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목표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 마련을 위해 전문가 양성교육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였다. 여기까지는 의료서비스에 관한 목표들로 우리나라의 치매 대책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 장기종합대책은 이 기본 의료서비스 외에도 비의료적인 측면에서 퇴행성뇌신경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진하고 이 질환으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감당하는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또한, 치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변화시키기는 행동계획을 수립하고 환자가 자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원 방안도 포함한다. 치매는 다른 질환에 비해 오랜 기간 투병해야 하는 질병이기에 이로 인해 환자 및 가족이 이웃과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보살핌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 장기종합대책은 많은 부분을 환자 및 그 가족의 인권 보호, 삶의 질 향상, 윤리적 접근방식에 할애하고 있다. 의료품질뿐만 아니라 의료행위 및 돌봄서비스가 얼마나 윤리적으로 이루어지고 환자의 권리가 어떻게 존중받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를 위해 알츠하이머질환-윤리실천운동본부(EREMA)가 설립되어 지침을 수립하고 관련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퇴행성뇌신경질환 장기대책 차원에서 특히 환자 본인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하는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 역시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택요양환자 지원 및 돌봄서비스기관(SAAD)은 자택에서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지원하고 자택요양환자간병서비스기관(SPASAD)은 가족 대신 간병을 책임질 간병도우미를 지원한다. 그 이외에도 환지와 환자 가족이 고립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8-2012 알츠하이머병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알츠하이머질환환자-자택돌봄서비스팀(ESA)이 2013년 12월 기준으로 4,154 개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알츠하이머환자요양센터(Cantou)나 인지행동장애단위시설(UCC)과는 별도로 알츠하이머질환환자-휴게시설(AJ)과 알츠하이머질환환자-단기위탁관리소(HR)가 마을 단위로 설치되어 환자뿐만 아니라 휴식이 필요한 환자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시설에 반나절이나 하루 또는 단기간 환자를 안심하고 맡기고 자신을 일을 보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시설은 단지 환자의 돌봄서비스만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를 위한 건강검진 서비스는 물론이고 환자가족을 위한 일반 정보 및 간병을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와 아울러, 환자와 간병인의 사회적 활동 및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이 직면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지원한다.

치매는 아직 원인 치료가 불가능하기에 이 질환을 관리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며, 생존 기간에 되도록 자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신기술이 적용된 기술솔루션을 제공한다. 인지기능자극술, 로봇공학, 이동성과 관련된 여러 독립적인 "리빙랩(living lab)"과 국립전문기술센터(CEN)가 개발된 기술적 제안은 환자들의 자립능력을 향상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 이외에도 치매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게임, 약물과다복용 방지 전자장치, 위치추적팔찌 등도 환자의 자율적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종합대책에 따라 최종적으로 인생의 마지막 시기 및 죽음을 대비할 수 있도록 임종돌봄서비스도 시행되고 있다. 또한, 환자 및 환자가족들이 이 질환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사회보장수당, 가족수당, 질병수당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이들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이 종합대책은 퇴행성뇌신경 질환에 대한 지속가능한 기초연구 및 코호트연구를 위해 할애한다. 프랑스는 퇴행성뇌신경질환 연구에 관한 논문 발표 건수가 유럽에서는 3위, 세계에서는 6위로 기록될 정도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관련 연구활동을 통괄하고 보다 효율적인 관련 분야 지원을 위해 ‘미래를 위한 투자프로그램(PIA)’을 통해 많은 투자를 실행하고 있다. 다학제간 협력연구의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모든 퇴행성뇌신경질환 관련 교차연구를 신경과학·인지과학·신경과·정신과-복합기관연구소(ITMO NNP)에 위임했다. 그 이외에도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 차원의 퇴행성뇌질환 분야 공동연구에 자국 연구기관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치매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물론 나름대로 대책을 수립하고 미래를 대비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의 노력에 비하여 초보적인 수준이다. 하나의 예로 질병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치매 관련 코호트 연구 분야에서 프랑스는 치매 증상 발병과 관련된 다양한 질환 별로 장기간에 걸쳐 추적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에야 비로소 65세 이상 알츠하이머성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코호트 구축에 착수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코호트 데이터는 상당수의 임상, 생물학, 유전학적 근거 및 수집된 데이터를 근거로 하여 환자를 재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코호트 자료는 환자 동종 집단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며, 층화의학을 통해 신뢰할 만한 조기 진단 및 새로운 치료법의 유효성과 허용치에 대한 평가를 용이하게 한다. 이러한 코호트 연구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장기적인 대책 수립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제 치매는 특정한 사람만이 관련되는 질환이 아니며, 날로 증가하는 고령 인구를 감안하면 시급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활동과 아울러 환자와 환자가족에 대한 지원, 더 나가서는 우리 사회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MND연구소의 연구활동은 질병에 대응하는 사회적 태도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문제 제기일 수 있다.

참조:
프랑스 알츠하이머장기종합대책 웹사이트: http://www.plan-alzheimer.gouv.fr,
프랑스 퇴행성뇌신경질환장기종합대책 웹사이트: http://www.gouvernement.fr/action/le-plan-maladies-neuro-degeneratives-2014-2019


8. 디지털치매의 역설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생물이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 프랑스의 진화론자 라마르크가 주장한 학설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근육이나 두뇌의 경우에도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이 저하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심각한 골절상으로 인해 특정 신체 부위에 장기간 깁스를 했던 환자는 골절 부위가 완벽히 회복되어 깁스를 푼 후에도 이전과 같은 신체기능을 한순간에 회복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근육과 관절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환자가 정상적인 운동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첫걸음을 때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반복해야 하는 것과 같은 물리치료 과정이 필요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신체의 각 기관은 수백만 년에 거친 환경을 이겨내고 생존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발달시켜 왔다. 인간이 근육을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먼 거리를 단시간에 이동하고 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힘들여 암기하지 않고 손동작 하나만으로 손쉽게 필요한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시기는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하다. 디지털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에 힘입어 양산된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힘든 소위 ‘호모 스마트포누스’들의 신체는 아직 이러한 변화를 유전학적으로 수용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 몸은 여전히 수백만 년간 진화의 과정을 거쳐 생성된 유전자의 영향 하에 놓여 있다. 수백만 년간 확립된 유전자는 한 끼의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도 두뇌 및 신체 각 기관을 활발히 움직이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 이에 반하는 열등한 개체는 생존경쟁에서 도태되었다. 하지만 인류는 예전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힘들여 몸을 움직이지도 골치 아프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인간을 대신하여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능 디지털기기가 거대기업이 베푸는 은총(?)에 따라 어린아이를 포함한 각 개인에게 보급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제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고 약도나 기억에 의존해 가고자 하는 경로를 찾아야 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임무를 위해 발전된 뇌세포도 휴업에 들어갔다. 임시 휴업인 줄 알았는데 기억과 계산을 담당하는 뇌세포를 운용하는 주인님이 더는 자신을 찾지 않자 이 부분의 기능이 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어느 때부터인가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물론 이 치매에는 베타 아밀로이드의 과도한 축적과 타우 단백질 이상으로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치매의 병리학적인 증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치매가 노화에 따른 퇴행과 관련되지만, 이 디지털 치매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20대나 30대 같은 젊은 층에서 주로 나타난다.

인류가 지구 상에 출현한 이후 최근까지도 사람들은 현실 속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부터 텔레비전, 인터넷 매체를 통해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하다가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에 이러한 현상은 급속히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직접 만남 대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 가상의 세상을 진짜보다 더 의존하는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소셜커머스를 통해 쇼핑을 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여가를 보내고, 은행업무도 보며,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한다. 애플리케이션 하나면 뭐든 가능한 세상인 것이다. 이 어플리케이션은 짧은 기간에 우리를 촘촘히 포위해 버렸다. 특히 청소년층은 대중교통 이용 시에도 멍 때리며 차창 밖을 바라보며 공상할 시간조차 없다. 이 호모 스마트포누스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놀 때도 애플리케이션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디지털기기로 장착한 젊은 세대는 많은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고 이를 활용하는 일에 익숙하기에 어찌 보면 이전 세대에 비해 똑똑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와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이들의 똑똑함은 스마트한 기기의 성능이 똑똑해진 것에서부터 기인한 것이지, 이 사용자의 두뇌가 똑똑해진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기기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와 반비례하여 인간의 두뇌활동은 퇴화한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암기하거나 기억하지 않아도 손에 스마트폰만 들려 있으면 생활의 불편함을 겪지 않고 무슨 일이든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은 인간의 두뇌가 오랜 기간 진화해 온 방식에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쉼 없이 사용되던 뇌 회로 일부분이 어느 날부터 스마트기기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장기 폐업상태에 돌입했다. 앞에서 용불용설을 들어 설명했듯이 사용하지 않는 기관의 퇴화는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디지털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렇게 사용하지 않은 회로가 늘어나게 되고 마침내 노화로 인한 치매 환자의 두뇌 상태처럼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며, 소위 디지털치매라는 요상한 용어로 대변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인간의 복잡한 두뇌활동을 돕는 스마트한 디지털기기가 씁쓸하게도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가는 역설적인 디지털치매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9. 예술의 일상화와 일상의 예술화

과거부터 예술은 일상과 구분되는 특별한 그 무엇이었고, 이러한 예술품을 생산하는 사람인 예술가를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했다. 하찮은 물체도 소위 ‘대가’라는 예술가의 손길을 거치고 나면 예술품으로 둔갑하여 이를 둘러싼 온갖 아우라와 의미가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예술품에 대한 특별한 의미부여에는 글줄깨나 쓰는 이론가들의 기여와 언제나 신화의 탄생을 갈망하는 대중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생겨난 신화 중 대표적인 것이, 미켈란젤로가 석산에서 돌덩이를 마주하면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형상을 보게 되고 신들린 듯한 정질로 이 돌 속의 사람들을 구출시킨다는 이야기다. 당시 예술생산에 대해 재구성할 수 있는 팩트는 다음과 같다.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로 활동할 당시에 비해 오늘날에는 다양한 조각용 도구 및 기계에 의존해서 조각을 하지만, 마케트라고 불리는 작은 모형(때로는 실물 크기의 모형)을 바탕으로 하여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방식으로 돌에 옮기는 작업에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사실, 미켈란젤로도 석고 등으로 모형을 미리 제작하고 컴퍼스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수치를 하나하나 정확히 측정해서 이를 토대로 작업을 했다. 또한, 당시 여러 명의 조수 또는 노예를 투입해 작업을 진행하는 관행이 있었고 그의 작품제작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화를 원하는 대중에게는 섭섭한 이야기겠지만, 그의 작품생산 과정은 통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신비로운 현상도 개입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만든 작품 속에 어떠한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과거 예술에서, 이러한 기대에 화답하는 이론가들의 글은 때로는 실제 시간과 관련 없는 관념적인 의미를 무차별적으로 생산했다. 현대미술 비평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이를 ‘개념적 핵심(conceptual core)’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작품이 가진 형식 및 내용상의 일관성을 전제로 하는 이 개념적 핵심은 평범한 물질에 관념적 아우라를 씌워 작품화시키는 데 공헌하고 대중은 작품 속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근대미학적 관점의 이러한 관념적 의미생산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마르셀 뒤샹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예술품은 한 작가의 독창적인 영감이 개입된 유일무이한 생산품이었다. 그러나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 모든 것은 달라졌다. 작가의 손길조차 타지 않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도 버젓이 미술관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일상의 오브제와 미술관에 진입한 오브제 사이에는 최소한 물리적으로 그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는 예술가가 직접 생산하지 않은 오브제를 포함하여 모든 물체는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일상적인 것과 구분되는 특별한 그 무엇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예술품에 대한 신화가 산산이 깨어졌으며, 이로써 일상과 예술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이와 아울러 대중들의 막연한 신화화에 기대어 신계와 인간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기거하던 예술가들은 인제 그만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이들에게는 이제 일반인과 구분되어야 할 그 어떠한 명분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들은 이제 화필에 영혼을 담아 대중을 감동시키거나 하찮은 재료를 다듬어 그 속에 심오한 관념적 의미를 심어놓은 마술적 예술가들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철학자에 의해 수 세기 전부터 제기되던 예술의 종말이 온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진 것은 과거와 현대 사이에 존재하는 예술에 대한 정의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 정의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언제나 변화될 수 있다. 이를테면, 예술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과거 예술이라고 인식했던 관념이 무너진 것뿐이다. 뒤샹 이후 많은 예술적 담론을 통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예술과 일상에 대한 구분은 오늘날 동시대 예술가들에게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상당수의 동시대 예술가는 자신의 창작활동이 철저히 일상에 근거하며, 과거 예술품을 장식하던 아우라라는 불필요한 옷을 자신의 작품에 덧입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예술의 다른 이름은 관념적 시간이 아닌 실제 시간을 근거로 하는 일상 속에 존재한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존재한 적도 없었던 예술품 속에 숨어 있는 개념적 핵심은 미술사를 통해 확인하면 그만인 것이다. 원래부터 예술가는 일상 속에 존재해 왔고, 일상의 관심사와 일상의 구체적인 시간 속에서 발굴한 소재를 근거로 창작활동을 영위하던 존재이다. 창작을 위해 과도하게 왜곡되고 추상적인 문맥으로 변화시킨 경우라도 출발점은 창작자의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동시대 예술에서 일상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들이 존재하던 그 자리로 되돌아온 것일 뿐이다.

MND연구소에서 표방하는 ‘예술의 일상화와 일상의 예술화’도 해석하기에 따라 예술을 아무것도 아닌 무가치한 행위와 동일시 될 수도 있다. 또한,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정의가 모든 창작행위에 무조건 예술이란 명품브랜드를 달아 염가로 판매하는 방식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미세한 차이로부터 출발한다. 과거에 예술품은 비교적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의되고 평가되었지만, 동시대 예술에서 예술품에 대한 정의는 더 개별적이고 다변화된 기준에 따라 평가된다. 일정한 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에 동시대 예술가는 창작의 매 순간 자신의 창작품과 예술과의 관련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또한, 자신의 창작품이 예술품이 되기 위한 ‘게임의 법칙’을 발명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이 게임의 법칙은 정형화된 미학적 규범 내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과거 예술을 판단하던 미학적 잣대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예술의 일상화와 일상의 예술화’가 예술의 대중화와 연관된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가변적인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매 순간 재정의하는 모호하면서도 난해한 작업과 연관된다. 때에 따라서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질문 자체가 전체 작업을 구성하거나, 이 두 요소 사이를 오가는 예술적 유희가 창작 그 자체가 된다. 이번 MND연구소 프로젝트는 이 두 가지 쟁점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치매를 연구하는 연구소와 예술창작 실험실을 동시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파생된 물리적 실체들은 작품이라는 이름 아래 화이트큐브에 진입하지만, 실제 작품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연구소와 창작실험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실체 없는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실체 없는 존재는 여전히 일상이란 거리에서 만보객처럼 어슬렁거린다.

 
[MND연구소 연구 중],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