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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t about <Ctrl+Z_Cheonggyecheon Project>
[Ctrl+Z_청계천프로젝트] Ctrl+Z로 새롭게 ‘발명’된 청계천을 바라보는 여섯 개의 예술실험 / 글.유승덕

 


청계千조각 CheonggecheonJogak
개발주의,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개발된 청계천의 화려한 경관 이면엔 오랜 세월 퇴적된 청계천 주변의 도심생태계의 특성이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엔 온갖 환영과 이미지로 넘쳐나는 지금의 청계천이 존재한다. 보드리야르가 디즈니랜드를 ‘실제 미국이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언급한 바처럼, 실재로부터 멀어진 이미지가 현실을 압도한다는 측면에서 청계천은 디즈니랜드와 닮아있다. 그렇다면 원본인 청계천의 모습, 그 실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것은 청계천의 복개 혹은 복원 이전의 한 시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특정한 공간 혹은 하나의 사건 등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총체적인 그 무엇이다. 각기 다른 시간대에 각기 다른 공간에 개입된 수많은 손길에 의해 하나에 하나를 덧붙여가는 방식으로 형성된 청계천변의 공간특성은 통합된 시각으로 분석되고 해석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청계千조각”으로 명명된 본 작업은 천 개의 서로 다른 조각으로 특징져지는 청계천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千개의 천 조각이 하나씩 박음질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막 드러내고 있는 청계천 형성의 프로세스에 주목하기 위한 것이다. 드로잉, 영상, 텍스트로 보여지는 작업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하나의 의미를 생산하는 구조를 이룬다. 각각의 작업들은 여러 천 조각을 이어 붙여 재봉질 하는 영상, 청계천변의 산업을 암시하는 깨알 같은 글자로 이루어진 드로잉, 오래된 신문기사에서 발전시킨 청계천변의 일상을 다룬 텍스트작업으로 구성된다. 특히 텍스트작업은 나머지 두 작업을 파생시키는 모태로 작용하는데, 1956년 2월 3일 경향신문에 게재되었던 “봄을 기다리는 개천”이라는 청계천변의 일상을 다룬 평범한 기사로부터 출발한다. 아직은 추운 날씨지만 봄을 기다리며 빙판에서 얼음지치기를 하고 있는 신문기사 속 한 아이로 빙의된 ‘나’는 당시의 청계천의 시공간으로 뛰어들어 픽션으로 청계천변의 삶을 체험하고 이를 통하여 청계천의 변천사를 유추하는 메타픽션적인 텍스트를 생산한다. 이 텍스트에 나오는 나의 엄마의 싱거미싱은 청계천을 형성시켰던 수많은 기억의 조각을 박음질하는 장치로 “청계천千조각”의 영상을 만들어 낸다. 한편 천변에서 만물상을 하고 공업사에서도 일하셨던 아버지가 판매하고 다뤘던 수많은 생소한 물건들을 지칭하는 문자들로 형성된 칼리그램은 한 가족사의 단면을 지시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발생적이며 상호유기적으로 형성된 청계천변 생태계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 청계千조각 | single channel video, 싱글채널비디오, 00:07:50, 2012
 

▶ 청계千조각 연구드로잉 | 트레이싱페이퍼 위에 연필, 각 A4, 2012

 
 
 
청계千조각 비하인드스토리 | 투명필름지 위에 실사출력, 가변크기, 2012
 
 

[경향신문 1956.02.03 기사]
"봄을기다리는개천"
立春닥아오니추위도한시름
◇....청계천 바닥에간신히 얼어붙은빙판위에서도 콧등이 발개진 소년들이썰매타기에 바쁘다
◇....빙도이하의 차디찬 기류속에서도 홍안이된어린군상들은 땀을흘려가며 겨울의추위를즐기고있었다
◇....겨울과 추위를아끼는아동들 머릿속에는 입춘(五일)이 닥아오는 것도 잊고한가로운시간을 보내고있었다 (사진은청계천에서)

청계千조각 비하인드스토리
내가 사는 곳은 답십리에 있는 청계천변 판잣집이다. 6.25 전쟁 이후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남쪽으로 피난 온 우리 가족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생계를 위해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품과 공구장비를 이곳 천변 노점에 깔고 팔기 시작했고, 그 수입으로만 여덟 식구가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던 어머니는 집값보다 더 비싼 중고 싱거미싱 한 대를 들여놓고 집에서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파는 물건에는 진귀한 것들이 많았다. 롤라이플렉스 카메라, 미군용 배낭, 미군용 워커, 군부대 보금품, 트랜지스터 라디오, 수동타자기, 썬그라스, 미제 초콜릿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희귀한 것들이었다. 그 중 딱 한 번 맛보았던 미제 초콜릿의 달콤한 맛은 우리 형제 모두를 활홀경에 빠지게 했다. 어머니는 솜씨가 좋아 어머니가 만든 옷은 곧잘 팔렸다. 가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실밥 뜯는 일등을 도왔으며, 어머니가 재단할 때 쓰다 버린 흰색, 분홍색, 파랑색의 자투리 초크는 우리 형제들의 벽화 그림의 좋은 재료가 되어 주었다. 이후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청계천 복개공사로 천변에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인근 한옥을 개조해 기계제작 수리 및 용접 일을 하는 어느 공업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평화시장 2층에 있는 먼 친적뻘되는 아저씨가 운영하는 한 봉제공장에 미싱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우리가 살던 집은 철거대상이여서 여덟 식구의 보금자리는 멀리 집값이 싼 신림동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언젠가 학교를 파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하시는 청계천에 놀러간 적이 있다. 새 일터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생소한 단어들을 종종 섞어 쓰셨는데 내 귀엔 그 말들이 무척이나 근사하게 들렸었다. 오비우라, 마쓰리, 시타마에, 하미다시, 기렛빠시, 가에리하시, 덴삥, 마이깡, 소데우라, 시보리, 에리우라, 요코, 우라지, 후타, 콤퓨레사, 밀링, 벤다기, 착암기, 휘니샤, 콤팩타, 파이프밴다, 니블러, 리머, 엔드밀, 람마, 알곤, 너트런너, 샤렌치, 밴드쇼, 마끼다……. 자신들의 힘겨운 삶을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은 우리 여섯 형제를 위해 하루 종일 일만 하셨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공부를 그리 썩 잘하지 못했던 나는 서울의 한 삼류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 해에 아버지는 드디어 ‘청계공업사’란 간판을 달고 사장님이 되었다. 이즈음 친척아저씨의 봉제공장이 부도를 맞게 되면서 어머니는 공장을 그만두고 집 안에서 가끔씩 소일거리로 예전에 장만했던 싱거미싱과 함께 동네 분들의 옷을 수선하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 형제들은 나이가 차게 되면서 하나 둘 부모님 곁을 떠나기 시작했고, 나 역시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 인근의 한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가게는 청계천복원사업으로 인해 또 한 번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복원공사 후 일감도 예전만 못하고 몸도 예전만 못하신데, 이제 일을 그만두라고 하셔도 늘 고집을 피우신다. 공사로 사라지는 가게들을 위해 송파구의 가든파이브로 이주키로 했으나 사업여건 등을 이유로 다시 하남으로, 그러다가 다시 파주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갈수록 흉흉해지는 이야기들과 청계천 일대의 재개발프로젝트사업의 등쌀에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우셨던지 아버지는 청계천을 쓸쓸히 떠나 지금은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신다. 혹시나 해서 예전에 고가에 구입했던 프레스기며 선반기계 등을 집 앞 마당에 끌어안고서 아직도 그 연세에 재기를 꿈꾸신다. 문득 아버지의 텅 빈 눈 속에 어느 이른 봄 청계천변에서 뛰어 놀던 나의 어린 날이 비쳐진다.

오늘은 유독 코끝이 찡하게 춥다. 얼어붙은 개천에 여느 때처럼 동네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우린 빙판 위에서 놀이를 즐기고 있다. 한참 놀이삼매경에 빠져있던 우리들을 향해 한순간 UFO같은 섬광이 스쳐지나간다. 섬광의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린 우리는 그 자리에 그만 얼어붙고 만다. 그 섬광의 정체는 말로만 듣던 외계인, 그것도 감색 모직코트에 체크목도리로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의 탈을 쓴 외계인이 요상한 물건을 들고 우리를 향해 섬광들을 계속 뿜어대고 있었다. 한순간 섬광들이 사라지자 외계인도 홀연히 그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이 존재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우린 곧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엉덩이를 얼음 위에 부벼대며 우리의 놀이를 계속 이어간다. 1956년 2월 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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