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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_아이덴티티 앙코르展"

2007.10.22 ~ 11.2
진흥아트홀

 

 
 
 

<Meta_identity; The mineral kingdom> video still

 

글.채창완(진흥아트홀 관장)


 

유대 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고전 9: 20~22)

진흥아트홀의 ‘Meta Identity 앙코르展’은 지난 8월 부천복사골갤러리에서 있었던 이민 작가의 개인전을 서울 신설동으로 장소를 옮겨 다시 여는 것이다. 부천이라는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마친 전시회를 다시 앙코르하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전시회를 소개하고 폭 넓은 담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작가가 설정한 주제 ‘Meta Identity’는 그의 비디오 작업으로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주제였다. ‘나’라는 주체에 관한 각기 다른 해석들이 네 개의 Section을 통하여 다각적으로 드러나도록 기획되었다. 다양한 대상들을 통해 ‘나’라는 정체성에 접근하는 작가의 모습은 마치 사도바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습니다”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은 ‘Meta Identity’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대상들이 ‘나’라는 주체와 관계성 속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대로 작가가 만든 ‘이미지’들을 통해 드러난다. 분명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사도 바울을 염두에 두고 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 표현된 사도 바울의 표현은 그대로 ‘Meta Identity’에서 이미지화 된다. 그 이미지들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혹자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포스트모던이란 담론 속에 그것은 자연스럽게 스며진다. 포스트모던은 결코 ‘나’라는 정체성을 ‘생각하는 나’와 같이 ‘이성적 주체’에게만 한정 짓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나’는 다양한 관계성 속에서, 즉 다른 사람, 다른 생명체, 자연, 환경, 사회 등과 같은 관계성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그 속에서 함몰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정체성의 위기” 또는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사도바울의 모습은 2000년 전 보다 오늘날에 더 적절한 모습일지 모른다. 그는 믿음 없는 자라는 오해를 받을지언정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 그를 다양한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게 한 원인이었다. 그의 다양한 정체성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오늘 날의 개인의 ‘정체성’과 다름 아니다. 만약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그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처럼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누린 자유였다.
이번 전시회를 관람하는 사람들도 작품을 통하여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속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관계성’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전시회가 주는 묘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