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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아직 유효한가?"


 
 
 

메타_익스히비션: 2차 전시_전시에 관한 전시 <담 (談)!>
2008.12.06_12.14

 

 

글.유승덕(작가, 전시기획자)


미술전시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일 필요가 있을까? 그럼 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면, 그럼 혹시 작가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수단은 아닌가? 이민개인전 [메타-익스히비션] 셀프영상인터뷰 문항 중에 이런 질문이 있다. ‘관객이 한명도 찾아오지 않는 전시가 있다면, 이 전시를 계속해야 한다고 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작가가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미술전시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미술전시라는 것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나 한계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전시가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런 상황은 이제 작가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별다른 문제제기도 없이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작가 이민은 자신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작가들이 한번쯤은 생각해야 할 전시에 관한 고민보따리를 전시장에 풀어놓고 말 걸기를 시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도 엄연하게 미술시장이라는 게 존재하고 미술품의 가치가 일반 상품처럼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된다. 이 속에는 예술품을 상품화하기 위한 치밀한 마케팅 전략과 주식시장과 같은 시세변동의 마법적인 그래프에 의해 투자자들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은 작가가 이러한 미술시장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을까? 대다수의 작가들은 이러한 유통시스템 밖에 존재한다. 일반적인 경제상식으로는 한 개인이 그 개인이 속한 사회가 만든 생산-유통-소비로 이어지는 경제시스템 밖에서 생산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참으로 놀랍게도 자신이 본업으로 종사하는 일에서 직접적으로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하면서 이 일을 지속하는 작가 군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보면 사회활동의 정상적인 구동을 위해 불필요한 것은 버그(bug)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버그 같은 존재들을 사회시스템 밖으로 축출하여야 하는가? 혹시 이들이 시스템설계자들이 저지른 프로그램의 오류를 유일하게 저항할 열쇄를 쥐고 있는 키맨(key man)들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들이 벌이는 작업과 전시행위 자체를 효용성의 측면으로만 가늠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 작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어찌 보면 낡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인 전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이것은 아마도 이번 전시를 통하여 작가 이민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1,2차로 나누어 진행된 전시를 통해 작가는 전시 자체에 대한 의문을 작업화 시키고 있다. 1차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가 CF영상, 포트폴리오, 셀프영상인터뷰 모두 작가 개인의 관심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전시 자체가 가진 메커니즘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전시에 관한 의문을 유발시키기 위한 이러한 장치는 2차 전시의 내용을 만들어 내고, 이렇게 만들어진 2차 전시는 다시 1차 전시에서 던져졌던 질문으로 피드백 되면서 종결점 없는 순환적인 고리를 만들어 낸다. 다소 과장된 방식으로 작품탄생의 과정을 보여주는 CF영상은 전시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자하는 작가들의 보편적 욕망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직접적이고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CF 종결부에 작가는 이야기 한다. “나는 예술가 이민입니다.”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들리는 이러한 발언은 전시를 왜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일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전시가 단지 작가 자신을 알리고자하는 욕망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자하는 작가들의 또 다른 욕망이란 무엇일까? 1차 전시에서 던졌던 이러한 의문점은 <셀프영상인터뷰>와 <삼자대면 라운드테이블_입담>을 통하여 각계각층의 다양한 답변을 만들어내며 2차 전시를 구성한다.

1차 전시에서 <누구세요?>와 <포트폴리오>가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작업을 기반으로 전시에 관하여 묻는다면 2차 전시를 위해서 녹취된 <셀프영상인터뷰>와 <X씨의 은밀한 작품 감상기>는 작가가 아닌 관객들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전시에 관한 작가 자신의 물음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확대되고 이렇게 형성된 관객들의 반응은 2차 전시를 만들어 낸다. 또한 2차 전시 오픈과 때를 맞춰 관객, 평론가, 작가를 ‘삼자대면 라운드테이블’로 불러 모아 전시에 관한 서로 다른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1,2차 전시를 통한 이러한 순차적인 구성은 담론생산을 위한 목적과 함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생산은 되었지만 문화적 유통도 소비도 이루어지지 않는 수많은 전시에서 잃어버렸던 요소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이러한 상징적 행위는 작업화 되어 2차 전시기간동안 전시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생산과정과 전시를 통해 이것을 세상에 유포하는 행위, 그리고 유포된 전시물을 통해 만들어지는 관객들의 반응과 담론들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배치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2차 전시에서 이것은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한통에 담겨져 동시 다발적으로 자신들의 소리를 내고 있다. 작가 이민은 전시에 관련된 전후 문맥을 모두 포함한 이 종합선물세트마저도 결국 전시라는 낡은 유통구조 안에 끌어드림으로써 전시에 관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묻는다.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방식으로서의 전시가 아직 유효한가?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