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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파라다이스,
예술이 이 땅에 생존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서의 예술협동조합"


 
 
 

 



문명화된다는 것은 분류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식물과 동물을 분류하고 인간과 동물을 분류하고 인간도 인종별로 구분되는 등 분류의 역사는 점차 세분화되면서 진행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예술도 처음부터 다른 분야와 분리된 독립된 영역은 아니었다. 주술과 예술조차도 명확하게 경계 지어지지 않던 원시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고대 그리스에서조차 예술을 지칭하던 테크네(techne)라는 단어는 그 범위가 광범위해서 현대에서 인식되는 좁은 의미의 예술(art)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분야를 쪼개고 분류하던 프로세스는 동시대 미술에 이르러 혼선에 빠지기 시작한다. 특히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미술들은 예술품과 평범한 오브제, 예술과 비예술, 예술행위와 일상적 행위와의 경계를 지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예술로 보지 않던 영역을 예술활동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Ouest Lumiere(서부전력회사)’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기업경영 방식을 도입한 예술활동을 하는 프랑스 작가 얀 또마(Yann Toma)를 들 수 있다.

그는 1901년도에 설립되었다 사라진 프랑스 국영 전력회사 ‘웨스트 뤼미에르 Ouest Lumiere’의 이름을 사용하는 권한을 정부로부터 부여받아 예술로 미래세계의 빛과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얀 또마의 Ouest Lumiere는 모든 조직의 명칭부터 운영체계를 기업운영 방식으로 세우고 예술활동도 기업의 생산활동 구조를 그대로 도입해서 활용하고 있다. 경제나 기업체계와 예술의 경계를 뒤섞는 이러한 실험은 전력회사라는 상징성과도 많이 결부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전기가 복잡하게 뻗어나가 세상을 밝히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리가 되는 것처럼 비물질적인 예술의 에너지가 세상으로 뻗어나가 미래세계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Ouest Lumiere의 핵심적인 운영철학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회사는 전기회로와도 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현재 수천 명의 예술가들을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이들의 활동을 통하여 사회공동체와 밀접한 관계망을 형성해 가고 있다.

2007년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프로젝트그룹 협동조합’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협동조합이 가진 상징성을 차용한 프로젝트형 예술기획 및 창작 활동을 병행해 나가고 있는 그룹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조합원)이 모여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접근하며 아울러 예술을 통한 실질적인 경제활동의 가능성을 모색해오고 있다. 이에 가공의 ‘주식회사 파라다이스’도 얀 또마의 가공의 전력회사 ‘Ouest Lumiere’처럼 파라다이스에 대한 꿈을 기업운영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예술은 결코 삶과 분리된 영역에서부터 출발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소위 ‘천재예술가’를 지향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사유의 방식으로, 특별하게 만들어 내는 창작물을 예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제활동 같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조차 마치 예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삶과 예술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의 테두리 안에서 예술이 태어나고 성장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기업활동과 예술활동에 대한 경계도 다시 한 번 재점검해 봐야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제기는 주식회사 파라다이스의 탄생지점이자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인류의 오랜 숙원이자 꿈인 파라다이스를 현 세상에 구현하고자하는 조금은 황당한 목표설정은 상상력을 동원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상력은 예술이나 기업 모두가 필요로 하는 기본 요소인 것이다. 주식회사 파라다이스의 주주이자 사원이 된 예술가, 그 예술가들이 모여 파라다이스의 꿈을 실재 안으로의 영입을 시도하며 그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가장 일상적인 것을 비일상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가장 비일상적인 것을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가 늘상 마주치는 대상이지만 지나쳤던 평범한 사물이거나 아니면 평생 한 번도 마주칠 수는 없지만 항상 존재한다고 믿는 그 무엇 속에서 파라다이스를 발견하는 방식들과 맞닿아 있다.

얀 또마의 서부전력회사가 상상만하고 실현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을 예술적 프로세스로 현실화 시켜주는 활동을 통해 실제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조직화된 기업운영체계 속에 비선형적인 동시대예술작품을 창출시키듯이 주식회사 파라다이스도 7명의 작가가 참여해 1년여 넘게 진행된 프로젝트를 통하여 상상의 산물로만 여기던 파라다이스를 현실적인 기업경영의 방식에 맞추어 창출하는 비현실적인 실험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무모한 실험의 배경에는 예술을 통해 실질적인 경제적활동의 가능성을 모색했다기보다는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의존적 혹은 기생적 관계를 통해 세상에 존립했던 예술의 생존방식을 자가발전식 생존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상징적인 몸짓이자 제안인 것이다.
예술은 역사적으로 어느 분야보다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 온 것 같지만, 사실 예술이 세상에 태어나고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대에 따라 파트너를 바꿔가며 자신이 명줄을 이어갈 메세나와의 관계를 만들어 갔다. 유럽의 경우만 봐도 기독교가 득세할 때는 교황이나 힘 있는 성직자에, 왕권이 세상을 장악할 때는 왕권에, 그 이후 근대에 들어 중소 상공인이 득세 할 때는 신흥부호인 중소 상공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예술활동을 이어갔다. 왜 예술은 오랫동안 메시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신들의 자유로운 창작에너지를 제한당하는 이러한 기생적 생존전략에 의존했는가? 이것은 경제적 자가발전력을 가지지 못한 예술의 속성에서부터 비롯된다.

주식회사 파라다이스는 예술의 이러한 기생적 속성을 전복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술활동 가운데 경제활동을 기조로 한 기업시스템을 도입하는 실험을 통해 보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상상’이라는 예술 고유의 속성이 더 이상 방해받지 않도록 ‘자가동력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주식회사 파라다이스의 주요 과업이자 향후 지속적으로 연구해봐야 할 숙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결코 기존의 미술품을 기업의 방식으로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시스템과는 본질적으로 차별화된 지점에서 출발한다. 기존 예술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전문화시킨 기업이 여전히 갤러리나 콜렉터를 대상으로 영업전략을 세운다면, 주식회사 파라다이스는 예술품과 예술활동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나 정의 자체를 백지화한 새로운 토대 위에서 출발한다. 이렇듯 새롭게 정의된 예술-경제의 영역 안에서 주식회사 파라다이스는 다름 아닌 예술이 이 땅에 생존하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한 일단의 예술가들의 제안이자 그 가능성에 대한 실험인 것이다.

■ 글.이민(작가, 주식회사파라다이스 전시기획자, 프로젝트그룹협동조합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