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xts list
   
 
Home

<SNS를 활용한 내러티브 기반의 예술창작>


 
 
 

 

 
글. 이민


내러티브(narrative)는 일반적으로 사실이나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를 설명하고 기술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단어가 다양한 예술텍스트 안에서 전문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을 때는 그 의미의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운 개념들이 생산된다. 특히 영화분야에서는 순차적인 이야기의 전개와 인과관계가 꼬리를 물고 전개되다 완결된 결말을 짓는 ‘고전적인 헐리우드 내러티브 양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1920~1930년대 영화계를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선형적이고 안정적인 내러티브 구조는 얼마지 않아 새로운 문제제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내러티브란 영화를 전개하는 이야기의 골조를 넘어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미장센(mise-en-scene), 즉 카메라, 조명, 배우 등 스타일상의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영화 서사학자인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는 ‘디제시스(diegesis)’라는 용어로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데, 그는 특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건의 연쇄와 그 사건들의 다양한 관계를 ‘디제시스’라고 정의한다. 이 용어는 스크린에 최종적으로 투사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선형적인 이야기 서술방식으로의 내러티브의 경계를 뛰어넘어 비선형적이고 대안적인 내러티브의 개념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확장된 의미의 내러티브는 단지 영화예술뿐만 아니라 시각예술분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각예술분야에서는 오랫동안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중심에는 항상 창작의 최종결과물인 작품이 존재했다. 작가는 시각적인 요소의 배치를 통해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동시대예술에 와서는 이러한 서사적인 구조는 ‘설명적’이란 이름으로 평가절하 받으며 차츰 사라지게 되고, 그 토대 위에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불투명성(opacity)’이라고 명명한 전략적 방식 속에 숨어들게 된다. 그래서 많은 동시대예술가들의 작품들이 태생부터 내러티브한 요소들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인식되고 설령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더라도 불투명한 포장으로 칭칭 동여맨 모습으로 관람자 앞에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확장된 의미의 내러티브의 개념 안에서 본다면 최종적인 작업의 결과로 나타난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든 요소와 그와 연루된 다양한 관계들도 결국 내러티브한 것이 된다. 이 내러티브 안에는 작품이 생성되기 위해 동원된 전략, 코드, 형식 등이 포괄되어 있다.

우리는 올해 SNS 기반의 두 개 프로젝트(SNAP, 소셜뮤지엄)를 진행했다. 과정 중심형의 이 두 개의 프로젝트들은 비록 최종적으로 전시의 형태를 포함하고 있지만 전통적 개념의 시각예술활동 이라기보다는 내러티브 기반의 예술활동에 더 가까운 것들이다. 이 프로젝트들에서 SNS 활용의 주목적은 전시를 만들어내기 위함도 SNS 자체의 매커니즘을 직접적인 작업으로 끌어들이기 위함도 아니었다. 동시대예술이 최우선으로 주목하는 태도(attitude), 그것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그룹 지어진 한 무리의 예술가들의 일상적 태도를 SNS를 통하여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창작의 최종결과물인 예술품이 아닌 예술창작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과 그와 연루된 다양한 관계들이 SNS를 통해 이야기되고 공유되는 대안적 개념의 내러티브인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SNS의 특성과 결합되면서 선형적 방식이 아닌 파편적인 이야기의 전개와 이전에 ‘예술이었던 것’의 경계가 허물어진 일상적 영역에서의 상호소통이란 토대 위에서 예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을 꿈꾸게 했다. 하지만 이런 익숙한듯 낯선 창작의 방식은 참여작가들이나 이를 바라보는 비평가들에게도 왜곡되게 인식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오해를 크게 나누어 보면, 하나는 5개월여간 페이스북을 통해서 진행되었던 과정들이 결국 전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만 인식되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SNS를 내러티브를 생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창작의 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e)이 1969년 기획했던 기념비적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되었을 때(when attitude becomes form)”를 통해서 엿볼 수 있듯이 동시대예술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나 예술가의 천재적인 독창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낡은 패러다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이러한 사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SNS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소통방법을 이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랄드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되었을 때” 전시와 SNS 기반의 이번 두 개의 프로젝트 모두 작품이라는 물리적 실체보다는 전시 혹은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들의 사고와 태도를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태도가 형식이 되었을 때”는 비물질성과 언어적인 작업이 중점이 되었다 하더라도 결국 이것들은 전시를 통해 세상에 선보여졌고, SNS기반의 이번 프로젝트는 전시뿐만 아니라 진행과정 자체가 SNS 미디어들을 통해 공유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난 수십 년간 창작결과물인 작품보다 그 이면에 있는 예술가의 태도와 창작의 과정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비물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창작의 과정과 태도가 세상 밖으로 나와 대중을 만나는 방법은 지극히 제한적이거나 아니면 지난 미술품 유통시스템 속으로 다시 편입되어 생동감없이 박제화된 모습으로 미술관 한구석을 차지하는 것이 고작이다.

박제화 되거나 제한적인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예술가의 태도와 창작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또한 예술창작 결과물이 아닌 예술의 내러티브 그 자체가 작품이 될 수는 없는가? 물론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고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SNS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고 이를 활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5개월이라는 진행과정에서 생겨났던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네트워크 내의 누구와도 실시간 접속할 수 있는 이번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SNS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고 이러한 공간 안에서 여과되지 않고 나타나는 예술가의 태도와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 그리고 새로운 예술창작 방식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적으로 변화된 예술가들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이번에 진행된 SNAP과 소셜뮤지엄 프로젝트에서 일부 참여자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않거나’ 하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아직도 예술품이라는 물질생산으로서의 작품이란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 상에 전개된 파편화되고 비선형적인 참여자들의 내레이션들은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일상과 예술, 창작공간과 전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러티브 방식으로서의 동시대예술의 새로운 창작형태에 대한 고민과 그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