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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의 전략적 장치로서의 셀프캐스팅 LAB >
 
 
 

 

[Self-Casting LAB] 갤러리AG, 2012
 
 
 

시대 첨단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종종 픽션을 바탕으로 한 공상과학소설가의 상상력을 뛰어넘기도 한다. 선형적인 연구결과의 축적을 바탕으로 하던 과학 분야에서도 과거에 비과학적이라는 명분하에 외면하던 비선형적인 예술가의 상상력을 일정부분 수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SCL(셀프캐스팅랩)은 이러한 시대 흐름의 맥락에 개입하여 가공의 실험실을 만들고 작가가 과학자로 셀프캐스팅하여 현재의 과학기술로 실현 불가능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이를 상용화한 가시적인 결과물을 생산해 낸다. 여기서 나타나는 가시적인 결과물은 실험실에서 통용되는 여러 가지 연구프로세스를 미메시스하여 재생산된 것으로 예술적 실험과 과학적 실험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특성은 예술가가 작업 대상을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상상하고 작품화시키는 것이 아닌 연기자가 캐스팅된 배역에 따라 타인의 삶을 대리하는 것처럼 과학자나 발명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변신시킨다는 설정 하에 관찰되고 기록된 것들을 영상, 설치 등의 작업을 통해 작품화시킨다. 이를 통하여 과학실험과 예술실험, 실재와 가공 사이에서 생겨나는 섬세한 경계의 미학을 고찰하고 과학과 예술의 ‘다름’과 ‘다르지 않음’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담론을 생성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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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프캐스팅: 온라인 게임에서 유래된 용어로 게임 상의 아군 혹은 자기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거나 변신할 때 쓰는 스킬로 상대편에게 마법 등을 거는 스마트캐스팅과 반대되는 의미로 쓰인다.


창작의 전략적 장치로서의 셀프캐스팅 LAB

영화에서 종종 감독은 어떠한 배역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이때 캐스팅된 영화배우는 감독의 페르소나로 존재한다. 이와 같이 셀프캐스팅된 배역이란 작가의 페르소나로 작용하기도 하고 작가가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사회현상이나 사회공동체의 페르소나로 작용하기도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도 가공의 과학적 연구를 빌미로 상상한 대로 발명해내는 마법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셀프캐스팅된 배역이 존재하는데, 이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못한 편리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현시대의 욕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창작의 전략 혹은 개념적 장치로 차용한 ‘셀프캐스팅’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과 태도를 창작의 목적을 위해 전혀 다른 지점 위로 이동시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지점은 이동하기 이전의 지점과의 간격으로 인해 삶과 예술, 비예술과 예술, 미학적 경험과 일상적 경험, 과학실험과 예술실험의 경계와 마주하게 된다. 이는 작품과 작품의 주변적 요소의 모호한 경계처럼 아직도 결론지어지지 않고 현재진행형인 동시대예술의 주요 논쟁거리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어떠한 틀 안에 있는 실체가 아니라 바로 틀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틀(경계) 자체가 예술작품의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이라는 데리다의 정의처럼, 셀프캐스팅랩에서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작품의 주변적 영역에 위치시킨다. ‘SCL 미래자원개발과학연구소’라는 가공의 연구소를 차리고 단 몇 분 만에 가축을 생산하고 농작물을 키워 내는 기술과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과학자로 셀프캐스팅된 작가는 연구실에서 이루어질법한 실험과 데이터를 생산하고 진지하게 연구 활동을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최종적으로는 예술창작품으로 재생산되면서 과학실험과 예술실험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작가 스스로가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게 하는 전략으로서의 셀프캐스팅은 동시대예술가가 취하는 난해하고 애매모호한 전략 중에 하나처럼 여겨 일축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셀프 캐스팅되어 변신한 또 다른 나와 작가로서의 나 자신, 미학적 체험과 삶의 체험 사이에서 생기는 공간(경계)은 마주보고 서있는 거울 사이에 위치한 사람이나 사물처럼 서로간의 이미지를 켜켜이 비추며 자기반영적 의미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미장아빔(mise en abyme)은 액자영화에서처럼 영화 속의 영화가 실제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 가기도, 때로는 이와 반대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며 다층적인 의미를 파생시키는 장치로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장치는 이전의 작업들, 예를 들면 자아 정체성을 또 다른 정체성에 이입시키며 자아정체성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2007년도에 이루어졌던 개인전 “메타_아이덴티티”와 발명을 위한 연구활동과 예술창작활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2010 뻥!돼지연구개발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번 전시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셀프캐스팅은 작업을 미장아빔의 상태에 도달하게 만드는 추진체 역할을 하게 되며, 이를 통해 나 스스로를 가공의 연구원(과학자)으로 위치이동을 시키게 되고 이것은 다시 미학적 차원의 물음으로 바뀌게 되는 전환사(shifter)적인 특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업은 예술적 가치와 미학적 구성을 가진 특별한 결과물로서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것과 저것 사이에 위치하며 수많은 질문을 파생시키는 스위치 역할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전시장에 소개하게 될 최종결과물도 전통적 개념의 작품 속성보다는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경계의 영역에 위치하는 비어 있는 기호이며, 이미 무언가 고정된 실체가 담겨 있다기보다는 관람자들의 시선에 의해 다양한 해석들을 담아낼 가능성 그 자체를 담고 있는 텅 빈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마치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위해 셀프캐스팅 했던 것과 같이 전시공간에 소개될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스마트캐스팅을 시전(始展)하게 될 것이다.

 
글.이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