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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눈'으로 본 여성주의 미술>
 
 
 

엄혁(미술평론가)

 

 

1. '어머니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세계

어떠한 문화 공동체에든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규정하는 가치는 존재한다. 이러한 가치와 질서는 현재라는 시공간을 넘어 미래의 목표로 추구되며 동시에 신성불가침한 의식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것들을 조금만 세밀히 검토해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순이 그것들 내부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한 것과 진실하지 않은 것.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않은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등을 지시하는 언어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하나의 이상한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그 이상한 언어의 원칙이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논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언어의 원칙은 언제나 자아와 타아, 진리와 허위, 의미와 무의미, 이성과 광기, 남성과 여성, 중심과 주변 등으로 세계를 이원화시키고 언어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경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이상한 원칙에 의해 생성된 언어들은 수직적이며 대립적이고 폭력적이며 지시적이다.

이렇게 대립적이고 이분법적인 언어, 곧 타아를 부정하는 언어의 발생은 바로 그 언어가 지시하는 자아를 세계의 중심부에 두려는 인간의 욕망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마치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회전한다는 중세기적인 우주관처럼 자아를 중심으로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개발되지 않은 인간 심성의 한 측면이다. 이 같은 의식은 언제나 '중심은 진리고 주변은 열등한 것'으로 설정하며 따라서 중심과 주변은 우열과 대립의 관계로 치환된다. 개발되지 않은 욕망이 힘과 결탁될 때 야만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야만의 역사는 마땅히 청산해야 할 유물이다. 또한 야만의 역사를 청산한다는 것이 주변적인 것 혹은 열등한 것의 해방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정리해야 하며, 여성해방 혹은 여성주의의 맥락을 짚어봐야 한다. 현재의 지적 분위기는 여성해방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해방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한 인간은 야만스럽게', '영리한 인간은 비현실적으로', '권위적인 사람들은 역사적인 편견을 가지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약간의 동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거대한 편견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여성주의가 근본적으로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야만스러운 인간사회의 종결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냉소적이거나, 허무적이거나 혹은 이러한 주장 자체를 낭만적인 이상주의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현실적 조건 속에서 여성주의라는 담론은 '아방가르드적인 구경거리', '부르조아 엘리트 여성들의 소일거리',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거리', 혹은 '점잖은 휴머니스트들의 정신적 낭비거리'정도로 소재화될 근거가 충분히 있기에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우려가 나타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현대의 지적차원의 운동인 반핵, 반전운동, 반공해 환경보호운동, 여성해방운동 등 다변화된 운동의 방향 또한 관심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전 지구촌 차원에서 야기되는 탈산업사회의 문제가 우리 현실에서 외세와 결탁된 종속적 독점자본 및 독재권력의 싸움을 통하지 않고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보적 담론의 선후 문제는 닭과 알의 논쟁처럼 소비적일 수가 있다. 사실 문제는 전체와 부분이 어떠한 유기적 관계가 있고 그것의 근원적인 출발과 해결하려는 궁극적인 목표의 지향점이 어떻게 일치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같은 맥락에서 개발되지 않은 인류의 의식이 만들어 놓은 모순들의 해결점은 바늘끝 같은 부분과 지구덩어리 같은 전체의 유기성을 모색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구덩어리 같은 전체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한 바늘끝같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주의라는 담론에 대해서 좀더 심사숙고 할 필요가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혹은 문화적/자연적 상태의 차별성을 우열의 관계로 두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야만의 역사는 여성주의라는 담론으로 치유를 모색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존재하는 언어와 텍스트 내부에는 위에서 언급한 이분법적 대립이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자유스러운 것이 없다. 객관과 주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같음과 다름, 남성과 여성 등 한 텍스트는 다른 한 텍스트를 억압하며 동시에 '역사적'인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여성주의가 개입할 수 있고 이것이 새로운 '시각' 곧 '어머니의 눈'의 새로운 역할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머니의 눈'을 통하여 현재 특권을 누리고 있는 텍스트를 보면 그 텍스트 자체가 자기의 존재를 위하여 반대편에 있는 텍스트에 의존(억압하는 형태로서)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동시에 그 반대편에 있는 텍스트를 '어머니의 눈'으로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자체에도 진정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어머니의 눈'이라는 여성주의 개념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지적 활동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도입할 수 있다. 어머니의 눈은 하나의 텍스트 혹은 이미지 속에서 일반시민들이 인지할 수 없었던 새로운(그러나 원래부터 존재했었던)사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어 그것의 역사성을 증명하는데 그 목표가 있거나 혹은 충돌하는 텍스트 사이를 중화시키는데 기여를 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언어 대립의 내부에는 언제나 폭력적 위계질서가 있고 이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테러하면서 우위에 존재한다. 어머니의 눈은 이러한 질서를 해체하는 담론이며,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