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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경계면에서 TV-프로그램의 구성: 말/이미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오은경(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센터)

 

 


1. 문제제기 및 관점


“세계는 집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로 옮겨지고 있다. 우리들을 위해서 사건들이 날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무엇으로 전달되고 있는가? 사건으로? 아니면 단지 사건을 그대로 모사한 것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사건에 대한 보도로?” (Anders, 2002: 129)


일상적으로 우리는 방송된 사건들을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현실과 매체 속 현실은 실제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TV-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과 텔레비전이 놓인 거실 밖 거리로 나가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같은 것인가? 귄터 안더스는 이미 1950년대에 텔레비전 매체를 예로 들어 현존하지도 부재하지도 않는 매체적 현실의 환영성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Anders, 2002). 텔레비전 방송에서 매개되는 매체 현실은 진실과 허위 사이에 위치하는 불확실한 공간의 대표적인 예이며(보드리야르, 2002: 98),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에게는 현실이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다고 의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게 된다. 이 글은 1) TV는 매체 밖 현실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 현실을 구성하고 있으며, 2) 이러한 TV-매체의 이중성(현실/환영)의 은폐 및 강화는 미학적 구성방식을 통해 폭로되고 해체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1)

매체(특히 20세기 이후 기술매체)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매체-현실의 관계 또한 새로이 설정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텔레비전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영상매체 속에서 관찰되는 현실 구성의 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며, 그 관찰은 텍스트/이미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관찰의 대상으로 고려될 포맷은 보도와 다큐멘터리, 오락 프로그램으로 제한할 것인데, 그 이유는 드라마의 경우에도 우리의 일상을 모델로 하는 현실묘사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지만 극영화에서처럼 명백한 허구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우선 보도, 다큐멘터리, 오락프로그램에서 관찰 가능한 ‘말/이미지의 관계’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음을 밝힌다.2)
a) 보충 및 대체 관계
b) 반복 및 대응 관계
c) 해체적 관계

영상매체가 보여주는 현실, 보도되는 사건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은 표면적으로는 실제적이고 명백한 것으로 보이는 재현 이미지의 허구성과 현실의 왜곡 가능성에 근거한다. 텔레비전 매체비평의 많은 부분 또한 이 주제영역에 집중되는 이유 또한 이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TV-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구성, 즉 생산과정에서 비판적 관점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 역설하고자 한다. 텔레비전 자체적으로도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나 근본적인 비판과 성찰이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는 매체기술의 발전에 의한 방송환경의 개선을 우선시하는 태도와 방송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이윤창출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대중매체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중성과 오락성은 매체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대칭점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오락성에 대한 견제는 대중매체라는 공적영역의 사회적 역할의 강조에 근거한다. 또한 복잡한 매체 간 결합의 기술적 실현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파편화된 정보의 광범위한 양적팽창이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매체미학적 관점의 보다 적극적인 도입은 매체문화 연구를 더욱 본격화시킬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 여겨진다.



2. TV-모니터: 세상을 바라보는 창/현실의 환영적 재현틀


“존재론적으로 텔레비전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재하는 것인가, 또는 그것이 실제적인가 아니면 영상일 뿐인가 하는 물음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Wiegerling, 1998: 117).

이미지는 현실의 재현을 위한 최상의 매개체로 여겨지며, 회화 영역에서 원근법이 가져온 패러다임의 전환은 되도록이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입증하는 예로 흔히 인용된다. 재현된 이미지는 그러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에서의 재현뿐만 아니라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의 이중구조 속에서 작용하기도 한다. 푸코가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거울은 이미지 속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분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전통적 스크린의 형태인 그림의 액자는 오늘날에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스크린이라는 “역동적 스크린”의 형태로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경계로 하여 공간이 구분되고 스크린 안의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일 뿐 아니라 그 내부에 이미 분화된 현실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계속되어왔다(마노비치, 2004: 145-154). 이미지 안에 관찰하는 시선을 장치해 둠으로써 관찰자는 이미지를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이중적인 관찰을 하게 되며 관찰자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회화에서 영상매체에 이르기까지 이미지의 영역을 살펴보면 현실의 재현 구도(있는 그대로의 반영과 역동적인 사회적 반영을 모두 내포하는 이중적 의미로서의 재현)에서 끊임없이 타자적 시선이 고려되었으며, 이를 역사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3) 이러한 점은 문자매체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데 텍스트가 허구적인 성격을 띠던(문학) 아니면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매개하던 간에(역사책) ‘재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선과 현재의 시선이 만나는 공간으로 규정된다. 뿐만 아니라 공시적인 관점(사회적 에너지)과 통시적인 관점(역사적 전망)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4) 반면 텔레비전 매체에서는 이러한 타자적 시선이 흔히 배제되는데, 이는 20세기의 주도적 대중매체로서 텔레비전을 규정하는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TV-모니터와 시청자의 관계 속에서 텔레비전이 환영적 매체로 규정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텔레비전의 화면에서 생산되는 이미지(내지는 현실)는 자체적인 질서를 갖고 역으로 실제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는 원본에 해당하는 현실의 변형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환영적 이미지도 모방의 대상이 되며 그 결과 원본의 위치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원본”과 “환영”의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텔레비전 매체의 속성(Anders, 2002, 188-206)에 근거한다. 원본과 환영의 재생산의 고리에서 텔레비전 화면의 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부재하며, 그러한 이미지의 효과는 원본 없는 이미지(보드리야르), 현실에 대상을 갖지 않는 이미지(비릴리오)의 효과에 다름아닌 것이다. 원본과 환영의 메커니즘 속에서 유지되는 텔레비전의 이중성에 대한 지적은 매체에 의해서 생산된 시뮬라크르적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보드리야르가 세 번째 질서의 시뮬라르크에 해당하는 이미지로 설명하고 있는 원본 없는 이미지(보드리야르, 1992)는 비릴리오의 ‘비디오그래피/인포그래피-이미지’(Virilio, 1989)로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미지들은 이제 더 이상 모방(그리고 속임수)이나 동일시를 위한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연관성이 부재하는 시뮬라시옹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20 세기 이후 기술매체의 이미지는 점차 폐쇄적이고 자기-지시적이며 더 이상 외부를 인식할 필요가 없는 자체 재생산적인 체계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왔고, 이러한 이미지에 근거하는 재현의 시스템이 전자매체에 종속적이 된 결과 현실상까지도 변형되는 것이다. 결국 “존재와 허상, 기호와 지시대상, 사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등의 고전적 대립이 사라짐과 동시에 이제까지 현실이라고 표시되던 것도 사라지게”된다(Wiegerling, 1998: 140).

하지만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시청자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모호함은 은폐되어야 한다.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쉽게 이해되어야 하고 그들의 동감과 동일시를 획득 하여야 할 뿐 아니라, 최근에 들어서는 시청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결정하기까지 한다.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해주고 오락을 제공하는 방송의 모든 과정은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은밀하게 주입되는 친밀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안더스가 이미 1950년대에 지적한 바 있는 텔레비전 방송의 특징으로서 ‘유사 친밀화’-현상(Anders, 2002: 116-129)은 오늘날 공중파 방송에서도 여전히 확인되고 있다. 매체 안의 생산된 현실이 마치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의 모습인양 친밀함을 가장하고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그것이다. 유사친밀화의 현상은 다양한 방송형태, 다시 말해 오락 및 체험 프로그램, 여행지나 맛집 소개 등 도처에 등장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낯선 사람, 낯선 물건들은 마치 친숙한 것인 양 우리의 집안으로 전달되고 소비된다. 매체 안에서 구성된 현실과 매체 밖 현실과의 경계는 시청자의 동일시와 모방의 행위를 통해 사라지고, 유사친밀성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일련의 행위들은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까지 자리 잡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모니터 안의 유명 연예인은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소개하는 레스토랑에서 그 요리를 한 번 맛보라는 유혹적인 말을 시청자에게 던진다. 그 결과 시청자는 매체 속 현실을 곧 자신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 행동에 옮기려는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에게서 느끼는 친밀감은 보도되는 사건에 대한 객관적 판단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프로그램의 특정한 구성을 통해서 방송은 사적 영역의 연장으로 규정되며, 이러한 유사친밀화 현상은 텔레비전이라는 단일 매체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 끼치는 영향력을 염두에 둘 때 간단히 지나칠 수만은 없다. 텔레비전의 ‘유사 친밀성’은 매체 속 현실에 믿음과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시청자의 순응적인 수용자세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방송제작에서 수용과정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 구성의 심층구조에서 작용하는 유사친밀화의 원칙은 재현된 현실, 매체 속 현실관계의 봉합을 매끄럽게 하고 시청자의 몰입을 돕는 기제로 여겨지게 된.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서 매개되는 현실의 이중적 '환영성'과 시청자의 ‘몰입’을 강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매체의 속도’이다. 매체의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흔히 실시간 방송을 가능하게 한 매체기술의 발달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사회적 주도매체로서 여전히 그 영향력을 갖고 있는 텔레비전의 경우 일상적 정보전달 매체라는 매체적 특성상 속도는 대중적 전파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전지구적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실시간 방송은 어떠한 사건이 문제가 될 경우 그 출발점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던 저녁 시간 공중파 방송의 뉴스를 통해서 확인되고 실제 사건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직까지의 현실이다. 가속화된 매체의 속도는 정보제공의 양적 팽창을 가져오고 인간이 그 정보를 분석하고 소화해낼 시간은 점점 부족하게 된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또는 매체적 현실)가 현실과 인간에게서 독립하여 자체적 영역을 구축,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세계체험의 직접성 상실과 탈의미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정보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현실의 경계에 대한 결정권은 매체에게 맡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위에 언급한 텔레비전의 유사친밀성의 위험은 또다시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사친밀성이 피상적으로는 서로 다른 현실공간의 매끄러운 접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청자의 맹목적인 순응이 이루어질 경우 오히려 인간은 매체외부와의 연관성을 상실할 수 있으며 인간 부재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게 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첨단 미디어 기술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주제인 기계와 인간의 결합 가능성 역시 매체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의 경계면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기계와 인간의 접점으로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터치스크린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3차원 인터페이스 기구가 개발 중이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TV-모니터5)는 사용자의 행동에 직접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엄격한 의미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규정할 수 없지만, 마노비치의 지적대로 서로 다른 차원 및 공간의 인터페이스로는 정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모니터 안의 세계와 시청자가 실재하는 세계를 분리하는 동시에 연결해주는 TV-모니터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이다. 문제는 그 창이 바깥세상을 향한 통로로서 우리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 창에 비친 세계가 아니라 창의 존재를 인식하게(소위 '이중적인 관찰'을 가능하게) 해줄 장치가 필요하다.



3. 현실의 재현/해체적 구성요소로서 말/이미지의 관계


책이라는 물질적 기반을 통해 오랫동안 인류 문화를 형성해온 문자매체는 20세기 이후 이미지의 도전을 본격적으로 받게 되었다. 문자 이전에 이미지가 존재했으니 이미지의 복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미지가 변화된 형태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오늘날 이미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동굴벽화나 그림이 아닌 기술매체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사진 그리고 영화의 동영상)를 연상하게 된다. 현실 재현의 주도적 역할이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넘어왔다고 본다면 그 중심은 영상매체가 되는 것이다. 책의 종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매체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문자와 텍스트는 여전히 현대인의 일상에 존재하며, 더구나 매체기술과 결합을 통해 자체적 변형을 꾀하고 있다(하이퍼텍스트). 영화를 이미지적이라 하고 텔레비전을 이야기의 매체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말과 이미지는 현대의 영상매체에서 필요충분적 관계 속에서 관찰되어야 하는 기본적 구성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영상매체, 특히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매체가 현실의 경계면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현실 재현의 기본적 구성요소로서 말/이미지의 관계설정은 거꾸로 매체적 현실의 구성의 분석에 기준이 된다. 우선 영상매체를 구성하는 언어적, 이미지적 요소의 결합형태는 단계별로 분류 가능하다. 영화에서처럼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서 ‘말/이미지’의 가장 일반적인 결합형태는 구어상의 말과 이미지의 결합형태이지만,보도나 다큐멘터리에서는 문자(텍스트)와 이미지만이 화면을 구성하거나 말과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가 동시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들 구성요소 간의 결합방식 및 적용비율에 따른 관계설정 또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말과 이미지뿐만 아니라 말을 구성하는 구어와 화면 텍스트도 각각의 효과를 갖는다. 여기에서는 텔레비전에서 흔히 관찰되는 결합방식을 중심으로 하여 ‘말/이미지의 관계’에 따른 유형을 대략 다음과 같이 구분해보겠다. 우선 말과 이미지가 a)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서로의 영역에 대해 보충 및 대체적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관계의 변칙적 적용의 예로서 b) 화면 텍스트와 구어적 언술이 반복과 대응을 이루는 관계 또한 관찰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c) 이미지의 다층적 편집과 말/이미지 관계의 해체 및 다양화가 시도되는 경우를 살펴볼 것이다. 머리말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러한 말/이미지 관계의 유형적 분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구성방식이 현실관계의 재구성과 맞물려 있다는 테제에 상응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a) 말/이미지의 적절한 조화를 통한 상호 보충 및 대체관계

말/이미지의 조화로운 관계설정은 일상적 영상매체로서 텔레비전의 기본틀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드라마나 시사/오락 프로그램,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관찰 가능하며, 이때 변별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장르에 따른 말과 이미지의 비율문제이다. 즉 화면에서 제시되는 이미지에 언어영역이 종속될 수 있고, 보도나 대화(토론 프로그램)에서와 같이 이미지가 배경으로 제공되어 현장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생생한 자료화면과 그에 대한 설명은 상호 보충적으로 작용하여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단계에서는 내용에 대한 믿음과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전체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말/이미지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현실에 충실한 재현이라는 법칙을 따른 것으로서 텔레비전 매체의 리얼리즘을 구축하는데 토대를 이룬다. 문제는 재현적 리얼리즘에 근거하여 동일한 주제와 포맷, 패턴의 반복이 이루어지고 같은 형식의 끝없는 재생산의 메커니즘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뉴스 프로그램의 구성에서도 관찰되는 말/이미지 사이의 다양한 관계설정(직접적, 간접적 연관)에도 불구하고,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언어 영역과 이미지 영역의 상호보완적 결합을 통한 안정적인 포맷이다. 이러한 뉴스 영상이 갖는 정형성은 궁극적으로 방송의 자체적인 권위와 연결된다(이종수, 1999). 그렇기 때문에 말과 이미지의 자연스러운 봉합은 시청자와 매체의 관계를 ‘수동적’으로 규정하게 되고 수용과정에서 시청자의 '순응적 태도'를 지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언어의 이데올로기적 사용이 현실관계를 교묘하게 은폐할 수 있듯이 이미지도 텍스트를 방해하고 잘못된 문화적 맥락을 형성할 수 있고, 이는 걸프전과 함께 매체전쟁을 현실로 경험한 바 있는 우리에게 이미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b) 말/이미지 또는 텍스트/구어의 단순한 반복을 통한 대응관계


말/이미지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본틀로서 보충/대체 관계의 해체는 우선 반복이라는 단순한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대표적인 예는 요즈음 공중파 방송에서 자주 눈에 띄는 빈번한 화면 텍스트(자막)의 사용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자막은 보도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간략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사용되거나(이미지에 대한 보충적 설명, 장소나 시간적 배경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인물에 대한 설명) 외국어의 번역 텍스트처럼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삽입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락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자막은 출연자의 말로 제공되는 내용의 단순한 반복일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텔레비전의 지배적인 서술방식인 ‘서술의 비가시성‘의 원칙과 그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코믹한 자막을 통해 이루어지는 담론적유희는 주석적 기능과 함께 제작자와 시청자의 놀이적 관계설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이수연, 1999). 이러한 관점에 덧붙여서 여기에서는 방송 프로그램 구성에서 ‘텍스트와 구어의 단순한 반복’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텔레비전 방송의 '유사친밀화'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특성 상 구어적 형태를 가지는 언어영역은 대부분의 경우 진행 상황을 전달하는 이미지와 자연스런 관계를 맺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부연설명이나 정보제시를 위해서 필요한 설정(뉴스나 다큐멘터리)이 아닌 받아쓰기(오락 프로그램뿐 아니라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빈번하게 눈에 띈다) 방식의 자막은 출연자의 언술의 단순 반복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 프로그램 포맷의 자체적인 진화양상을 보여주기는 한다. 대중문화의 트렌드에 상응하여 이모티콘을 첨가하거나 시청자의 반응을 유도하는 듯한 PD의코멘트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에 대한 다정한 말걸기처럼 보이는 이러한 시도는 어떠한 정보 전달이나 해석의 기능도 담지하고 있지 않으며, 시청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이나 또 다른 ‘미학적’ 의도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청자의 순응적 수용을 유도함으로써 방송되는 내용에 대한 단순한 몰입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더구나 모니터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시청자가가 함께 유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유사친밀화'의 극단적인 예로서 제시될만하다.

방송의 오락성은 시청률과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률을 의식하게 되면 어떠한 장르를 불문하고 방송저널리즘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기가 쉽다. 내용적으로는 주제 선정의 자유와 외형적 형식의 느슨함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들이 뉴스나 토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보다는 다양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빈번하게 관찰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현재의 방송제작 현실에서 오락성이 맹목적으로 지향된다면 시청자와의 관계는 표면상 ‘가까운’ 것으로 규정될 수 있겠지만 결국엔 시청자의 현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를 시청률 향상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동제작자로서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맥루언이 매체가 전달하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매체 자체라고 예언한지 이미 반세기가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에만 집착하고 있으며, 내용에 몰두하도록 유도당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c) 이미지의 다층적 활용과 말/이미지 관계의 해체 및 다양화

이미지만으로도 서사는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회화에서 미디어아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일부 컴퓨터 게임의 서사구조에서 확인된다. 또한 이미지와 말의 영역이 느슨한 관계 속에서 결합되어 직접적인 연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설정되는 경우도 있다. 텔레비전을 통해 소개된 클로드 란츠만 Claude Lanzmann의 기념비적인 영화 <쇼아 Shoah> (프랑스, 1985)의 경우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내레이션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에 대해 서술하는 반면 화면은 현재의 인물들(실제 또는 연출된 인물)과 장소를 보여줄 뿐이다. a)와 b)에서 살펴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익숙한 포맷 그리고 말/이미지의 결합방식 역시 몇몇 과격한 실험 형식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시도는 영화나 미디어 아트에서는 이미 새로운 표현형식의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매체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새로운 형식의 시도는 영화와 회화를 연결시키거나(<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Draughtsman's Contract>, 피터 그리너웨이, 영국, 1982), 텍스트와 이미지, 동영상을 영화 속에서 결합시키거나(<프로스페로스의 서재 Prospero's Books>, 그리너웨이, 영국, 1983) 또는 책과 CD-Rom의 결합형태인 시각적 책(<플로라 페트린슐라리스 Flora Petrinsularis>, 장 루이 부아시에, ZKM/Cantz, 1993)을 만들어내었다. 이들 영역과 비교해볼 때 텔레비전에서 뉴미디어에 대한 성찰은 주로 방송기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방송의 프로그램에서 고려될 경우 현실감을 강화를 목적으로 하거나 이미지 조작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위의 예들에서 언급한 실험적 시도들이 텔레비전 매체와 결합될 경우 그 의미는 매체로 인해 고착화되는 단순한 일상성의 틀을 깨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김용석, 2000: 103-123).6) 또한 앞에서 텔레비전 매체의 속성으로 언급된 바 있는 유사친밀성과 환영적 이중성을 폭로하고, 시청자 관점의 다중화를 통해 판단력의 형성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독일의 독립텔레비전 방송제작사인 dctp의 프로그램의 분석을 통해서 텔레비전 매체에서 시도된 말/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텔레비전이라는 단일매체를 통해 매개되지만, dctp-프로그램은 그 구성에서 이미 다양한 매체 및 표현형식의 결합이 특징적이다. 말과 이미지, 문자매체와 영상매체, 초기 무성영화에서 최근의 디지털/전자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의 복합구성이 눈에 띌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장르(문학, 오페라, 영화, 음악극 등)의 하이브리드적 구성이 인터뷰를 중심으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포맷의 일반적인 원칙으로 눈에 띄는 것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새로운 결합형태의 시도이다. 이는 특히 일정한 형식원칙에 의해 구성되어 ‘문화매거진’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들7)에서 분명하게 관찰된다. 문화매거진은 기존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포맷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별점을 갖는다. 문화매거진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의 형식적인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말/이미지의 동시적 사용에서 각각의 구성요소들(대화/화면텍스트/이미지)은 상호지시적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dctp-프로그램을 상징하는 ‘흐르는 텍스트’8)와 화면 속의 ‘책’-모티브 활용은 영상매체의 수용에 독서행위를 연결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텍스트가 화면 속에서 이미지처럼 다루어지는 한편, 또 다른 언어형태인 말은 인터뷰의 대화로 제시된다. 시각적 차원의 ‘텍스트/이미지’는 청각적 차원(말/음악)과 결합하고 각 요소들의 반복적, 중첩적 관계가 형성된다. 다시 말하면, 청각적으로 인지되는 대화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문자 텍스트 사이 그리고 이미지와 말 사이의 관계는 상호적인 부연 설명 및 해석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호 위배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일치, 불협화음적인 관계는 시청자의 수용과정에 간섭의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문자의 경우 텍스트-띠 속에서 점멸함으로써 인지과정의 연속성은 파괴되는 한편, 이미지들은 조각나고 겹쳐지며 거울에 비쳐지는 낯설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텍스트와 이미지는 모두 단절면을 갖게 된다(Ralf Schnell, 2000: 227).

- 이미지의 차원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소스의 영상자료(회화, 사진, 영화, 다큐멘터리 영상, 공연예술의 장면 등)의 결합과 화면처리의 기술적 효과이다. 화면을 분할하여 책장을 넘기는 효과를 내거나, 다층적 화면분할(흔히 배경으로 선택되는 창문은 텔레비전 모니터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관점의 다중화의 전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의 반복과 중첩 등 특수효과의 적극적 활용으로 이루어지는 이미지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편집(오려지고 연결되는 몽타주방식)의 효과이다. dctp-프로그램은 다매체성에 근거하면서도 매체의 단순한 결합형태만인 아닌 고유한 매체미학적 구성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차이, 반복, 중첩의 원칙에 근거한 ‘다매체적 내러티브’에서 말과 이미지의 영역은 구분되면서도 융해되고 상호작용적이면서도 해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말과 이미지의 관계설정은 소외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시청자를 자극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서 계산된 것이다.

dctp의 프로그램에서 관찰한 말/이미지의 새로운 관계설정의 시도는 시청자의 관습적 수용과정에 혼란의 요소로 작용하며, 시청자의 이해과정을 방해하고 방향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시청자의 자연스런 동화를 방해하는 이러한 장치들은 결과적으로 수용과정의 속도를 지연시키고 매체적 ‘근접성’의 환상을 깨게 되므로 시청자는 매체에 의해 강요된 의미와 리얼리티에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매체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시청자가 ‘새롭게 보는 방식’을 익혀야 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역할을 인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Uecker, 2000: 148-165). dctp-프로그램의 매체형식은 매체 간 결합을 가시화함으로써 시청자(멀티미디어시대의 독자)의 인지과정에 영향을 주고, 이를 통해 일종의 매체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기능을 한다. 한편 텔레비전이라는 영상매체의 수용과정에서 말과 이미지의 복합관계는 음악적 요소의 적극적 사용을 통해서 감각과 사고의 상호작용으로까지 유도된다. dctp의 문화매거진에서 말/이미지의 낯선 결합형태를 통해 예상되는 효과는 의사소통과 정보수용의 순차적이고 단선적 과정의 단절 또는 동시다발적인 감각의 사용을 통한 인지과정의 활성화이다. 이러한 시도는 텔레비전을 재구성한 극단적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지린스키, 2002: 115-117).

위에 언급한 몇몇 상호매체적 구성의 예는 매체에서 ‘말/이미지의 관계’의 새로운 규정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매체구성의 새로운 시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미학적 원칙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이질적 요소의 동시적 사용을 통해 단절과 불연속성이 생성된다. 틀 구조와 몽타주 기법이 적극적으로 적용되며 이는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서재>와 클루게의 <문화매거진>에서 관찰 가능하다.
- 상호매체적 융합은 의도적으로 매체간의 분리 및 접합을 가시화시킴으로써 수용과정에서의 거리두기 효과를 유도한다.
- 하나의 모니터에 여러 개의 창을 제시하거나 창이나 거울 모티브를 사용하여 현실을 낯설게 하고 관점을 분화시킨다.

이러한 미학적 기법에서는 말/텍스트의 영역과 이미지의 영역의 상호관찰을 통한 소외효과가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이는 몰입을 방해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관점 및 해석의 다양한 층위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미 영화와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상호매체 구성은 숨 가쁘게 변하고 있는 매체환경의 변화, 매체기술의 발전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적용되기는 힘들겠지만 매체성찰의 계기로는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4. 의사소통 및 정보전달 매체의 한계와 미학적 극복


이미 영화 <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USA 1998)를 통해 우리에게 폭로된바 있는 완벽한 현실 재현의 허구성이 대중매체에 대한 단순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미 매체현실과 매체 밖의 현실이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러한 세계의 리얼리티는 그 두 현실, 또는 그 관계 속에서 매 순간 끊임없이 재생산, 재구성되고 있는 현실들의 비율과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리얼리티는 완벽한 재현이나 멋진 가상현실에의 몰입을 통해서 가시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는 여러 현실들을 구별하고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획득될 것이다. 대중매체는 분명 사회 구성원들이 이러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줄 사회적 책임이 있으며 그에 대한 고민이 요청되는 것이다. <블레이드 런너>, <매트릭스>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SF-영화에서 (매체)기술의 발전을 통해 야기될 수 있는 암울한 미래상이 예견된바 있으나 매체학자들은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가상현실의 등장으로 인하여 현실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지고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질서가 허용됨으로써 인간의 위치도 불확정적이 된다. 텔레비전 시청자는 지구촌에 분산되어 있는 불특정 개체(안더스)로서 모니터와의 관계에서만 규정되는 파편화된 개인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 또는 PC-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고립된 개개인은 “프랙탈적 주체”(보드리야르)9)가 되어 개성을 잃어버리고 수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고리에 갇혀버릴 수 있는 것이다(Schnell, 2000: 312).
오늘날 매체의 새로운 규정은 ‘정보매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로 특징지어지던 20세기의 매체 패러다임은 정보 전달체로서의 매체의 기능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정보매체의 부상과 동시에 정보교류의 양적 팽창과 그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방향성 상실이라는 비판적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매체의 패러다임 전환도, 이미 토마스 쿤에게서도 확인된 바 있듯이, 연속적인 발전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의 의사소통/정보전달 기능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매체와 현실의 관계에서 계속해서 지적되어오던 많은 기존의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문제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의사소통매체의 중심에 있는 텔레비전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환경을 규정하는 기본적 원칙과 요소는 네트워크의 연결보다는 오히려 매체 간 배치에서 발견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상호매체성의 규정은 기술적 관점에서 본 매체 간의 접합(사진-영화)에서 출발했지만(Paech, 1998; Spielman, 1994) 디지털 합성기술을 통해 매체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요구된다. 소위 상호매체성으로 이해되는 다매체간 상호작용은 모든 것이 모니터에서 이루어지는 텔레비전 방송에는 다소간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백남준 이후 텔레비전 모니터는 이미 상호매체적 구성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매체적 변형의 중요한 물질적 기반이기도 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상호매체적 구성의 시도가 텔레비전 방송의 영역에도 도입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즉 영화나 미디어 아트 등 주변 매체와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매체적 성찰의 시도는 프로그램 구성의 내부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이는 매체비평 프로그램에서 제안되는 방식인 방송에서 책을 읽도록 권장하거나 소개하는 프로그램 형태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프로그램 형식의 개발에 대한 요청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dctp-프로그램의 경우는 텔레비전 매체에 대한 비판이 외부에서보다는 자체 영역의 틈새 만들기라는 전략을 통해 이루어진 대표적인 예이다.

대중매체의 '수용과정'에서 흔히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청률이며, 이때 시청자는 양적으로 고려되지만 여기에서도 관점의 전환은 필요하다. 즉 시청자의 방송참여가 그의 인지 및 인식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지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질적인 차원에서 시청자가 계산될 경우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시도가 현실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며, 이러한 시도를 통해 시청자가 감각적 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 또한 가능하다. 그러한 기대와 맞물려 TV-프로그램의 미학적 구성에서 예상되는 또 다른 효과는 대중문화적 피드백의 중심에서 텔레비전 매체가 보다 생산적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학적 시도를 통해서 매체 속에서 타자적 시선을 가능하게 하는 틈새 공간이 생산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반복은 단순한 동어반복에 그치지 않고 변형과 변이의 과정을 거쳐 관점의 재구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생산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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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이버방송영상정보센터/가우리블로그정보센터(G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