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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3판 읽기 (주요 테제를 중심으로 요약, 해설)
 
 
 


 

 

“하부구조보다 훨씬 더 서서히 진행되는 상부구조의 변화는 반세기 이상의 세월을 소요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생산조건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벤야민의 이 말은 경제적 토대가 문화적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즉 그는 상부구조의 메카니즘 자체의 상대적 독립성을 상정한다. 그가 이 에세이에서 추구하는 것은 오늘날(즉 벤야민이 이 글을 쓸 당시)의 생산조건 하에서 예술이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를 진단하는 일이다. 그는 현재의 “생산조건의 변증법은 경제의 영역에 못지않게 상부구조 속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이 제시할 예술발전의 경향에 관한 테제들이 지닐 투쟁적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상부구조는 토대의 변화에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토대 자체의 변화에 추동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이 에세이에서 영화관을 대중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훈련장으로 보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다분히 소박하고 낙관주의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에세이가 담고 있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논의라기보다 지식인의 투철한 자기 비판적 성찰들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자기비판이라는 것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전통적 예술이론과 미학이 전체주의적 국가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용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의미에서의 성찰이다. 그리하여 벤야민은 자신이 “이 에세이에서 제시할 예술발전의 경향에 관한 테제는 일련의 전통적 개념들, 이를 테면 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 등을 제거해 버린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그는 자신이 전개할 예술이론적 성찰들은 “파시즘의 목적을 위해서는 전혀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에세이의 목적과 성격은 따라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19세기 초 사진의 발명을 필두로 시작된 복제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예술의 개념과 기능에서의 변화, 생산과 수용에서의 변화양상을 기술하는 일이다. 둘째, 이 새로운 예술론을 통해 예술이 파시즘적으로 이용되는 상황에 맞설 문화정치학 내지 정치적 미학을 제시하는 일이다. 첫째 목적에서 벤야민은 기술이라는 것이 예술가가 사용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예술생산과 수용의 선험적 조건임을 제시한다. 둘째 목적에서 그는 파시즘이 “정치의 심미화”를 추구하는 데 맞서 예술을 정치화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1절: 수공적 복제와 기술적 복제

벤야민은 복제기술의 발달사를 개괄하면서 19세기 초 석판인쇄와 사진술의 발명으로 가능해진 기술적 대량복제가 인간의 생활방식에서 종전의 수공적 복제와 질적으로 상이한 변화를 가져왔음을 지적한다. 나중에 서술되겠지만 이 변화의 범위와 정도는 예술과 예술미학에만 한정되지 않고 인간의 지각과 경험구조와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까지 미친다.

그는 “석판인쇄 속에 삽화가 든 신문이 숨겨져 있었듯이 사진 속에는 유성영화가 숨겨져 있었다”고 말한다. 1900년을 즈음해서 기술복제는 전래된 예술작품 전체를 복제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또 예술작품의 영향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적 처리과정에서도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2절: 진품성, 아우라, 전통의 청산(변증법적 과정)

여기서 벤야민은 예술작품 원작의 “진품성” 개념을 도입하여 논의를 우회한다. 그것은 이 진품성이 결국 기술복제시대가 열리면서 위축되고 소멸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원작의 시간적, 공간적 현존성이 원작의 진품성을 이루며, 이 진품성은 기술적 복제가능성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진품성은 수공적 복제 앞에서는 권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기술적 복제 앞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기술적 복제가 원작에 대해 수공적 복제의 경우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기술적 복제는 확대, 고속촬영 등 기계적 조작을 통해 자연적 시각으로 포착할 수 없는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둘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게는 도달 불가능한 상황에 원작의 모상을 옮겨 놓을 수 있다. 사원과 같은 건축물이 제 자리를 떠나 아틀리에에서 녹화될 수 있고, 콘서트홀에서 연주된 합창곡은 집의 안방에서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예술작품의 시공간적 현존성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사물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찍힌 자연 풍경은 예술작품의 대상으로서의 자연 풍경과 달리 진품성에 손상을 입는다.

벤야민은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 증언가치 전체를 포함하여 그 사물에서 원천으로부터 전수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개념이다”라고 정의한다.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가치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복제를 통해서 후자가 인간의 손을 벗어나게 되면 전자, 즉 역사적 증언가치 역시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흔들리는 것은 그 사물의 권위이다.

이어서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아우라(Aura)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시대에 위축되는 것은 그 작품의 아우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축과정이 갖는 의미는 예술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 이 아우라적 경험이 전통적 경험방식이었다면 이제 복제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에서 분리시킨다.

복제품의 대량생산과 복제품의 현재화는 결국 전통적인 것을 동요시키게 된다. 이러한 전통의 동요는 현재 인류가 처한 위기와 변혁의 이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와 변혁은 오늘날 대중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영화는 이러한 대중운동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이다. (대중운동의 예로 우리는 정치선거전, 노동운동, 스포츠축제, 혁명, 전쟁, 시민운동, 민주화운동, 기타 파시즘에 의한 대중동원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절(追記)에서 서술하지만, 여기서 벤야민은 영화라는 수단을 대중을 파시즘적 대중동원에 이용하는 데 대항하여 영화의 또 다른 속성에 맞게 대중을 스스로 계몽하고 조직하는 훈련장으로 이용할 필요성을 암시한다.)

영화의 사회적 의미는 영화의 파괴적, 카타르시스적 측면에서 확인되는데, 그것은 곧 문화유산이 지니는 전통적 가치의 해체를 가리킨다. 여기서 벤야민은 아벨 강스의 말을 인용한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시자, 아니 모든 종교가 필름을 통해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모든 영웅들이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

이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벤야민이 말하는 전통의 해체는 우선 탈신화화 과정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즉 전통에서 작용하던 힘들이 - 지배자들, 위인, 거장, 천재들 - 영화로 복제되면서 그 신화적 마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순한 해체과정이 아니다. 즉 영화를 통한 전통의 광범위한 해체과정은 변증법적 성격을 띤다. 즉 여기서 해체는 단순히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해체된 것을 그것의 권위와 특권적 배타성의 영역에서 해방시켜 만인의 향유와 이용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여기서 만일 아우라 역시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에 편입된다고 볼 수 있다면 아우라는 복제기술을 통해 소멸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되고 확산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신비성이 제거된 아우라는 자기모순적일까?)

▷ 참조: G.S., Bd. VII, 753: “제의적 요소가 제거된 아우라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아우라의 붕괴는 아우라가 제의적 요소를 벗어버리고서 아직 인식할 수 없는 요소들에 접근해 가는 과도기적 과정일 뿐인지도 모른다.”

 

3절: 현대의 지각작용: 아우라의 붕괴,해체,소멸/ 이러한 붕괴의 사회적 조건

벤야민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인류의 생존방식과 함께 지각방식도 변화를 겪어왔다. 그는 현대인의 지각작용의 매체에서 생긴 변화가 아우라의 붕괴로 파악된다면, 이러한 붕괴가 일어나게 된 사회적 조건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우라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으로 정의한다.

그가 설명하는 아우라 붕괴의 사회적 조건은 우선 두 가지인데, 이 두 가지 사정 모두 오늘날의 삶에서 날로 커 가는 대중의 중요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첫째 조건은 “사물을 공간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자신에게 보다 더 가깝게 끌어오려고 하는 것은 현대의 대중이 갖는 열렬한 욕구이다.” 둘째 조건은 “현대의 대중은 복제를 통해 모든 사물의 일회성을 극복하려는 성향을 갖는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날로 커져간다는 것이 벤야민의 진단이다. (앞서 벤야민이 아우라에 대해 내린 정의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비(非)아우라적 시대의 사물의 체험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까운 것의 반복적 나타남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일회성과 지속성이 전통적 회화를 특징짓는다면 일시성과 반복성이 복제품을 특징짓는다.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로부터 떼어내는 일, 즉 아우라의 파괴는 현대의 지각작용이 갖는 특징이다. 이러한 현대의 지각이 “동일한 것을 감지하는 능력”은 복제를 통해 일회적인 것으로부터도 동일한 것(= 반복 가능한 것)을 빼낼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다. 그리하여 통계학의 의미가 이론분야만이 아니라 실생활의 영역에서도 부각되고 있다. 현실이 대중에 정향(定向)하고 대중이 현실에 정향하는 현상은 사고와 관찰의 영역에서 무한한 중요성을 지니는 과정이다.

 

4절: 의식가치의 동요

벤야민은 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 진품성, 전통, 아우라의 개념들에 이어 이제 “儀式가치(= 祭儀가치, Kultwert)”의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이 의식가치가 복제기술에 의해 점점 더 무효화됨으로써 일어나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서의 변화를 진단한다.

전통의 연관 속에 깊이 침윤되어 그것의 일부를 이루는 예술작품의 원초적 모습이 잘 나타난 것은 儀式 속에서이다. 원래 예술작품은 처음에는 마술적 儀式, 다음에는 종교적 의식 속에서 생겨났다. 예술작품의 이러한 아우라적 존재방식이 그것의 의식기능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은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즉 “진품적인”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儀式에 바탕을 두었고, 이 의식 속에서 그것의 최초의 사용가치가 근거해 있었다. 이러한 점은 미에 대한 숭배의 가장 세속화된 형태에서도 세속화된 儀式으로서 알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300여 년 간 지속된 세속적 미에 대한 숭배가 그 본래의 근거를 드러낸 것은 그것이 최초의 혁명적 복제수단인 사진술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으면서부터이다. 그와 동시에 사회주의가 태동하였다. 예술은 이 위기에 예술의 신학이라고 할 예술지상주의, 순수예술의 이념으로 맞섰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은 세계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종교적 의식 속에서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을 벗어나도록 했다. 예술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할 척도가 효력을 잃어가면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 또한 변화를 겪게 된다. 종교의식적인 데 근거를 두고 있던 예술의 사회적 기능 자리에 또 다른 사회적 실천, 즉 정치에 근거를 둔 예술의 기능이 들어서고 있다.

 

5절: 수용태도의 변화: 의식가치(제의, 존재미학) vs 전시가치(정치, 새로운 미학)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수용태도에서의 변화과정을 의식가치와 전시가치라는 개념쌍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종교의식의 모태에서 벗어날수록 그것의 전시기회가 증가해왔고, 수용의 역사에서 의식가치가 전시가치에 의해 밀려난다.

예술작품의 기술복제의 여러 방법이 생겨나면서 그것의 전시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두 가치 사이의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로 바뀌게 되었다.(변증법)

“오늘날 예술작품이 갖는 새로운 기능들 가운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드러진 기능은 예술적 기능이지만 어느 날엔가 이 예술적 기능 역시 부수적 기능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즉 여러 복제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예술작품의 전시가능성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에 예술작품의 절대적 역점이 그것의 전시적 가치에 주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이 계속되면 예술작품의 제의적?미적 가치 및 그것의 예술적 기능은 언젠가 그 절대적 가치를 잃고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예술의 전시적, 과학적, 실용적 가치와 기능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설 수 있다.

 

6절: 사진에서 정치적 가치, 전시가치의 발견: 아뜨제

기술적 복제의 본격적 시발인 사진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 예술의 영역을 지배하던 의식가치가 전시가치에 의해 밀려난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을 담은 초창기 사진은 의식가치의 최후의 보루로서 마지막 아우라를 발산한다. 그러나 사진에 내재한 전시가치의 우월성을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은 훨씬 뒤, 특히 아뜨제 Atget의 사진에서였다. 파리의 거리들을 찍은 그는 “타성에 젖은 쇠퇴기의 초상화 사진술이 퍼뜨린 질식할 듯 한 아우라를 최초로 소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멸된 것과 못쓰게 된 물건에서 소재를 찾았다. 따라서 이러한 영상들은 이국적이고 화려하고 낭만적으로 들리는 도시이름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이러한 영상들은 마치 침몰하는 배로부터 물을 빨아들이듯이 현실로부터 아우라를 빨아들인다.” (?사진의 작은 역사?, 245)

“아뜨제는 거창한 광경이나 이른바 상징적 기념물들은 지나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긴 구두가 길게 늘어서 있는 광경,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수레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집 마당의 광경, 식사를 한 뒤의 식탁과 미처 치우지 못한 수백 개의 그릇들, 건물 정면의 네 군데에 5라는 숫자가 엄청나게 크게 부각되어 있는 사창가 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들 사진이 한결같이 공허하다는 점이다. (...) 이러한 장면들은 쓸쓸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정취도 없는 것이다. (...) 초현실주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일종의 인간과 세계 사이의 유익한 疏外가 준비되어진 것도 바로 이러한 그의 업적들에서이다. 정치적으로 훈련된 시각에 하나의 장, 즉 낯익어 보이는 모든 것이 세부적인 것의 조명을 위해 탈락되는 그러한 場을 열어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소외다.” (앞의 책, 246)

아뜨제에서 사진은 범행 장소를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로 기능한다. 이것이 사진의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의미이다. 그의 사진들은 정관적 태도에 어울리지 않으며 오히려 일종의 불안감을 야기한다. 여기서 이정표가 필요해 진다. 사진제목이 화보신문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사진제목이 화보의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주는 지침은 그 뒤 영화에서는 더욱 정밀하고 강압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영화에서는 개개의 화면을 파악하는 일이 그에 선행한 화면들의 연속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제목과 사진제목의 상이점:
회화제목: 안정감을 주고, 집중시키고, 상징적이고, 화해와 위안을 주고, 靜觀에로 초대한다.
사진제목: 충격적이고, 주의를 분산시키고, 알레고리적이고, 낯설게 하고, 정치적이다.

 

7절: 사진과 영화 초창기의 논쟁: 영화가 예술인가?

기술복제의 시대가 예술을 종교 의식적 토대에서 분리시키면서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가상은 소멸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여기서 생겨난 예술기능상의 변화는 인식되지 못했다. 19세기에 사진과 회화의 예술적 가치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20세기 영화의 초창기에도 지배적이었다. 사람들은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전체적 성격이 바뀌지 않았나 하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전래의 미학적 시각으로 새 매체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화 초창기의 영화이론들은 영화에서 초자연적인 것, 제의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경탄하였다. (아벨 강스, 세브랭 마르스, 알렉산드르 아르누, 막스 라인하르트)

 

8절: 시험하는 감식자로서의 영화관중

무대배우와 영화배우의 연기의 차이는, 무대배우의 경우에는 연기가 총체적인 데 반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영화배우의 경우에는 분석적이다. 영화배우의 연기는 시각적 테스트를 받는 셈인데, 그것은 우선 그 연기가 카메라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기 때문이고, 또 연극배우처럼 공연 도중 관중에 맞추어 자신의 연기를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관중은 관중대로 카메라의 태도, 즉 시험하는 감식자의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관중의 수용태도는 의식가치를 감상하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9절: 카메라 앞에서의 소외, 몽타주 (cf. 가상과 유희)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는 카메라라는 기계 앞에서의 연기로서 “소외”가 내재해 있다. 피란델로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이러한 공허감과 소외감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배우가 자신의 인격이라는 아우라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아우라는 사람의 시공간적 현존성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분위기의 模寫란 있을 수 없다. 배우와 그 배우가 행하는 역할의 분위기 모두 영화에서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른하임은 “영화연출에서는 가능한 한 적게 연기함으로써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고까지 말한다. 아른하임은 배우가 소도구처럼 취급되는 상황을 서술한다. 영화배우의 연기는 연극에서와는 달리 하나의 통일된 작업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개별 작업이 합쳐져 이루어진다. 몽타주 수법에서는 이러한 분석적 작업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영화의 성격은 예술이 지금까지 꽃피울 수 있는 유일한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아름다운 가상’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10절: 소외의 보상으로서의 스타숭배, 영화의 객체와 주체로서의 관객

영화에서의 소외상황을 보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타숭배”라는 재(再)아우라화의 시도는 영화자본에 의해 추구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정은 영화가 전통적 예술관에 대한 혁명적 비판을 촉진하고 있는 점을 막지 못한다.

스포츠의 경우처럼 영화는 관객으로서의 현대인으로 하여금 누구나 화면에 찍힐 수 있는 권리를 누리도록 촉진한다. 글쓰기 작업에서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생산자와 수용자의 구별은 지양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소련에서의 상황을 보면 노동자가 노동을 표현하는 일이 그의 노동과정에 속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발전한다. “글 쓰는 능력은 이제 특별한 전문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방면에 걸친 기술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그러한 능력은 공동소유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영화에서 일부 배우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의 배우가 아니라 자신을 - 특히 노동과정에서의 자신을 - 연출하는 민중이다. 서구의 경우에는 자본주의적 착취로 인해 자신을 연출하는 현대인의 요구가 무시되고 있다. 서구의 영화산업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스펙터클을 통해 대중의 수요를 창출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는다. (→ 문화산업론에서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와 합치하는 주장)

 

11절: 연극과 영화, 화가와 카메라맨

여기서 벤야민은 연극과 영화, 화가와 카메라맨을 비교하면서 영화를 통해 구성되는 현실의 독특한 성격을 부각시킨다. 그에 따르면 영화 제작소에서 기계장치는 너무 깊숙이 현실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기계장치라는 이물질에서 벗어난 현실의 순수한 모습은 하나의 특수처리과정, 즉 카메라의 독특한 조작을 통한 촬영의 결과로서, 그리고 똑같은 종류의 다른 촬영장면들을 조립한 결과로서 생겨난 것이다. 기계장치에서 벗어난 현실의 모습은 여기서 현실의 가장 인위적 모습이 되었고, 직접적 현실의 광경은 기술의 나라에서 “푸른 꽃”(이상)이 되었다.

벤야민은 마술사와 외과의사의 관계는 화가와 카메라맨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화가는 주어진 대상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거리를 유지하는 데 반해, 카메라맨은 작업할 때 마치 환자를 수술하는 외과의사가 주어진 대상의 조직에 깊숙이 파고들듯이 현실의 대상 속으로 침투한다. 카메라맨이 이렇게 침투하여 분석적으로 얻어내는 현실의 여러 단편적 영상들은 다시 새롭게 편집되고 조립된다.

이처럼 카메라의 개입 없는 현실의 모습이 영화의 현실묘사에서는 바로 카메라를 집중적으로 침투시키는 작업을 통해 얻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의 구성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영화의 리얼리즘)

 

12절: 영화의 진보성 = 수용태도상의 변화: 비판과 감상의 일치

이 절에서 벤야민은 복제기술이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에 끼친 변화를 언급한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피카소와 같은 회화에 대해서 가졌던 보수적 태도가 채플린과 같은 영화에 대해 갖는 진보적 태도로 바뀐다.”

전통적인 예술을 대하는 개개의 수용자의 태도가, 관습적인 것은 아무 비판 없이 향유하는 반면 새로운 것은 혐오감을 가지고 비판하는 태도로 특징지어진다면, 영화의 경우 집단적 수용이 가능해지고 영화를 대하는 관중의 태도에서는 비판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영화를 감상하는 관중의 진보적인 태도의 특징은 바로 즐거움을 느끼는 감상자의 태도가 전문적 비평가의 태도와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데 있다. 전통 예술에서는 전문가와 비전문적 수용자(=대중) 사이의 분리가 점점 더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반해, 영화에서는 이 두 가지 태도의 통합이 촉진된다는 점에 영화의 진보성이 있다.

여기서 벤야민은 회화의 위기는 단순히 사진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와는 상관없이 예술작품이 대중에 대해 갖는 요구 때문에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이 점에서 벤야민의 이론은 기술결정론이 아니다.)

 

13절: 지각의 심화: 시각의 무의식, 유희공간의 확장, 영화의 정신 치료적, 카타르시스적 기능

여기서 벤야민은 영화가 가져다준 “지각의 심화”를 강조한다. 영화는 지금까지는 눈에 띄지 않은 채 지각의 넓은 흐름 속에 함께 들어있던 사물들을 분리하여 분석가능하게 만든다. 영화는 사물을 확대, 정지, 연장, 압축하여 보여주는 카메라기술의 도움으로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공간, 시각의 무의식적 공간을 확장시켜 준다. 이와 함께 영화는 학문과 예술의 상호침투를 촉진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영화는 그것이 보여주는 화면이 갖는 예술적 가치와 학문적 가치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벤야민은 이러한 데서 영화가 갖게 될 혁명적 기능들 중의 하나를 본다. (또 다른 예: KBS 역사스페셜: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한 “석굴암”이나 “황룡사9층 목탑”이 보여주는 미적 가치와 과학적 가치의 혼융 현상)

영화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유희공간을 제공해 준다.

“우리들의 술집과 대도시의 거리, 사무실과 가구가 있는 방, 정거장과 공장 - 지금까지 우리는 바로 이러한 것들 속에 구제할 길 없이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것이 영화가 등장함에 따라 이러한 감옥의 세계가 10분의 1초의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됨으로써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진 감옥세계의 파편들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모험에 가득 찬 여행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영화는 “사물세계의 정신분석”을 보여준다. 즉 정신분석학을 통해 충동의 무의식적 세계를 알게 된 것처럼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비로소 “시각적 무의식”의 세계를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벤야민은 영화의 정신치료적, 카타르시스적 기능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괴기영화들이나 디즈니의 영화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심리치료적 의미에서 폭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위험한 긴장관계들을 대중에게 몰고 왔는지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기술화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러한 대중적 정신이상에 대해 심리적 예방 접종의 가능성을 제공한 측면을 볼 수 있다. 영화는 가학적 혹은 피가학적 망상들의 과도한 발전 형태들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에서 그러한 에너지들이 자연스럽고 위험한 방식으로 축적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영화관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도 이와 유사한 카타르시스적 기능을 갖는다. 괴기영화들의 출현은 인류의 문명화과정이 수반해 온 억압들로 인해 인류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예고해 준다.

 

14절: 다다이즘: 충격적?촉각적 성질, 수용태도: 정신집약

이 절에서 벤야민은 예술의 기능 내지 과제를 서술하면서 영화가 왜 현대인의 욕구에 부응하는 예술인지를 설명한다. 그는 예술 일반의 과제를 이렇게 정의한다.

“예로부터 예술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아직 충족되기에는 때 이른 어떤 수요를 창출해 내는 일이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 있는 효과를 앞질러 획득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다다이즘의 경우 영화를 통해 쉽게 얻어지는 효과인 산만한(=정신분산적) 수용의 태도를 회화라는 예술형식을 가지고 앞질러 획득하려 했다. 이러한 정신분산적,?오락적 수용태도를 촉발하는 것은 전통적인 예술작품이 가졌던 관조적?시각적 성질에 대비되는 어떤 충격적?촉각적 성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새로운 예술형식으로서 영화는 그것이 본래 갖는 기술적 구조를 통해 기존의 관조적 예술형식의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다다이즘의 이러한 노력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영화의 촉각성은 영화에 대한 수요를 촉진시켰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정신분산적 요소는 무엇보다 촉각적인 것이고, 그것은 또한 보는 사람의 눈에 단속적으로 들어오는 영화장면과 카메라앵글의 교체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감상할 때 연상의 흐름은 끊임없는 영상의 변화로 인해 곧 중단된다. 영화의 충격효과는 바로 이러한 중단의 원칙에 바탕을 두며 이것은 수용자에게 정신집약(Geistesgegenwart)을 요구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영화는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증대하는 삶의 위험에 상응하는 예술형식이다.”

“충격효과에 자신을 노출시키고자하는 욕구는, 충격효과에 직면해서 생겨나는 위협에 적응하고자 하는 욕구의 한 표현이다. 영화는 인간의 지각체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깊은 변화에 상응한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대도시의 교통의 혼잡 속에서 모든 행인이 다 경험하는 것이고, 역사적 차원에서는 오늘날의 시민이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15절: 영화와 건축의 유사점: 정신분산적, 집단적 방식의 수용, 촉각성, 사용, 습관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대중적 수용이 그것의 기능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설명한다. 예술작품 앞에서 정신집중(침잠)하는 사람은 그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이에 반해 정신이 분산된 대중은 예술작품이 자신들 속으로 빠져들어 오게끔 한다. 영화는 건축과 유비되는데, 그것은 그 둘이 정신분산적, 집단적 방식으로 수용된다는 점에서이다. 벤야민은 사람들이 건축물을 수용하는 태도에서 여러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건축물은 사용과 지각, 더 정확히 말하면 촉각과 시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촉각적 수용은 주의력의 집중을 통해서라기보다 익숙함(습관)을 통해 이루어진다. 건축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촉각적 수용은 시각적 수용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촉각적 수용은 긴장된 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대상을 주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건축물의 수용방법은 경우에 따라 규범적 가치를 갖는데, 그 이유는 역사의 전환기에 인간의 지각구조에 부과된 과제는 단순히 시각, 즉 관조를 통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러한 과제는 촉각적 수용의 주도 하에 익숙함을 통해 점차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 분산된 사람도 익숙해질 수 있다. 어떤 과제를 정신분산적 오락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이미 하나의 습관이 되었음을 입증해 준다. (...) 예술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강하고 더 두드러지게 정신분산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수용방식 - 이것은 또한 지각작용에서 일어나는 깊은 변화의 징후이기도 한데 - 은 그 고유한 연습수단을 영화에서 찾고 있다. 영화는 충격효과 - 이러한 충격효과는 영화에 내재적인 몽타주기법 등 영화의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 를 통해 대중의 정신분산적 수용방식에 상응한다. 오늘날의 예술의 생산과 수용은 다다이즘 이후 정신분산, 충격효과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영역들 가운데 영화가 가장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있으며, 또한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 이루어지는 정신분산적 요소들은 다른 예술형식들을 감상하는 데 기초가 되고 있다 (예: 설치미술, 현대음악, 서사극 등). 이처럼 영화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적 특성들을 통해, 바로 기술의 발전이 몰고 온 인간의 지각구조의 변화에 인간 자신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갖는다.


참고: 벤야민의 매체미학 ▷

“여기서 왜 영화관이 벤야민에게 탁월한 매체미학적 의미를 지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영화의 기술적 특성들은 현대의 형식문제들에 정확히 상응한다. 그래서 벤야민은 영화에서 ‘오늘날 기계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모든 직관형식, 템포, 리듬이 전개되어 나온다고 본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예술의 모든 문제들은 오로지 영화와의 연관에서만 궁극적으로 언표될 수 있다’ (V 498) 이러한 벤야민의 정의 속에는 ‘직관형식’, ‘이미 형성되어 있음’, ‘언표’와 같은 용어들이 서로 엄밀하게 맞추어져 있고 기술적 표준, 지각의 변화, 매체이론이 엄밀성과 객관성을 갖고 한 맥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쉽게 알아챌 수 있듯이 그것은 형식이라는 맥락이다. 그에 따라 벤야민은 형식을 ‘순수히 객관적으로 제기된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푸는 일’에 대해 자연이 제공하는 ‘보답’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현재에 대한 모든 진단에 대해 ‘우리 시대에 결정적인 형식들은 기계 속에 숨어 있다’(V 217)는 점이 드러난다. 현대에 세계관계의 자연형식은 더 이상 인간 속에 있지 않고 기계와 매체기술 속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새로운 매체와 기술들은 그것들이 세계 내 존재의 자연형식들로서 수용되어야만 비로소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벤야민의 매체미학은 ‘기계들로부터 자연적인 추론을 도출하는’(II 1506) 안내서라고 볼 수 있다.” (Bolz/Reijen: Walter Benjamin, S. 112)


추기: 정치의 미학화 vs 예술의 정치화

파시즘은 대중이 폐지하기를 요구하는 소유관계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대중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표현하게 함으로써 정치적 삶의 미학화를 획책한다. (대중은 축제행렬, 대규모집회, 스포츠경기에서의 대집회, 전쟁과 같은 데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마주 한다. 이러한 대중의 복제는 대량복제에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대중의 움직임은 일반적으로 육안으로보다 카메라에 의해 더욱 더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총통숭배를 위해 수모를 강요당하는 대중의 강간은 종교적 의식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봉사를 강요당하는 기계의 강간과 쌍벽을 이룬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치의 심미화의 정점은 전쟁이다. 전쟁만이 소유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재의 모든 기술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예술에서의 전쟁미학은 나름대로 이러한 미학화에 봉사한다. “전쟁의 파괴성은, 사회가 기술을 사회의 유기적 일부로 병합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으며, 또 기술이 사회의 근원적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제국주의적 전쟁은 일종의 기술의 반란이다. 일찍이 호머의 시대에 올림푸스의 신들의 관조대상이었던 인류는 이제 그 스스로 관조대상이 되었다. 인류의 자기소외는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대해 공산주의는 예술의 정치화로써 파시즘에 맞서고 있다.


[보충자료]

1. 벤야민의 테제들 요약
①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재조립하는 데로 이끈다.
②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현재화한다.
③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정치화한다. (혹은 문자화한다)
④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소모시킨다.
⑤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그 최적의 작업가능성을 영화에서 구현한다. 영화는 예술작품의 기술복제의 시대에 어울리는 예술형식이다.
⑥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을 정신분산(오락)의 대상으로 만든다.
⑦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지난 시기의 예술작품들 사이의 생존경쟁을 극대화시킨다.
⑧ 예술작품의 기술복제는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회화 앞에서 낙후했던 관계가 이를 테면 희극영화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관계로 변한다.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Bd. I-VII., Frankfurt a. M. 1972-1989. Bd. I, 3, 1039)

 

다시 한 번 종합하자면, 벤야민이 이 에세이에서 기술하고 있는, 영화의 진보적 혹은 “혁명적 기능들”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영화는 기술적 복제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복제기술을 통한 예술의 생산과 대중을 통한 예술의 수용은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종교적 의식 속에서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로써 종교의식적인 것에 근거를 두던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자리에 또 다른 사회적 실천, 즉 정치에 근거를 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대신 들어서게 되었다). 이 점이 영화의 진보적 성격을 이룬다.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영화의 혁명적 기능을 본다.

첫째, 영화는 지금까지는 눈에 띄지 않은 채 지각의 넓은 흐름 속에 함께 들어있던 사물들을 분리하여 분석가능하게 만들고, 이로써 지각의 심화를 가져왔다. 영화는 사물을 확대, 정지, 연장, 압축하여 보여주는 카메라기술의 도움으로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공간, 시각의 무의식적 공간을 확장시켜 주었다.

둘째, 영화는 학문과 예술의 상호침투를 촉진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영화는 그것이 보여주는 화면이 갖는 예술적 가치와 학문적 가치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셋째, 영화는 “인간의 전 생활환경의 문자화”를 촉진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즉 현대의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자신의 작업(노동, 직업)을 표현할 권리를 갖는데 이것은 문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 더 가속적으로 가능케 된다. 이로써 생산자와 수용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향도 촉진된다. (이와 함께 영화는 영화를 감상하는 수용자로서 대중에게 전문가적 비평의 태도와 비전문가적 감상의 태도를 분리시키는 대신 통합시키는 경향을 갖는다.)

 

2. 벤야민의 기술복제 논문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

(아도르노가 벤야민에게 보낸 1936년 3월 18일자 편지.)
벤야민씨, 제가 오늘 귀하에게 귀하의 각별한 논문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려 하는데, 그것은 어떤 비판을 하거나 적절한 회답을 주려는 의도에서가 결코 아닙니다. (...)

그래서 중심이 되는 가닥에 제 논의를 국한시키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귀하의 논문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의 사고 속에서 귀하의 원초적 의도들 - 신화와 역사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구성하는 일 - 이 관철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열성적인 공감과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바입니다. 즉 그것은 신화의 변증법적 자기해체인데, 이 논문에서는 이것이 예술의 탈마법화로 관찰되고 있습니다. 귀하는 “예술의 해체”라는 주제가 여러해 전부터 저의 미학적 연구의 주된 대상이었다는 사실, 제가 무엇보다 집요하게 기술의 우위를 강조했던 것이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고 귀하가 말씀하신 제2의 기술의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아실 겁니다.

(...) 그런데 제가 의아하게 여기는 점은, 그것도 제게 브레히트적 모티브들이 승화되어 나온 잔재로 보이는 점은, 귀하가 지금 마법적 아우라의 개념을 ‘자율적 예술작품’에 함부로 적용시키고 있고, 이 ‘자율적 예술작품’을 거침없이 반혁명적 기능을 갖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제가 부르주아 예술작품이 지니는 마법적 요소를 확연히 意識하고 있다는 점을 귀하에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저는 어느 모로 보나 미적 자율성의 개념에 귀속되는 시민적 관념론의 철학이 지니는 신화적 성격을 폭로하는 작업을 거듭 수행해 왔기 때문에 그 점은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자율적 예술작품의 중심 자체는 신화적 측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 이 부분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 그 자체가 변증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자율적 예술작품은 자체 속에 마법적인 것을 자유의 징표와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 귀하의 논문이 변증법적이라고는 해도 자율적 예술작품 자체에서는 변증법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귀하는 논문에서 기본적인 경험, 제게는 제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통해 매일 분명하게 하는 경험을 간과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자율적 예술이 기술적 법칙을 추구하게 되면 그 최종적인 결과 자율적 예술 자체는 변화하게 되고 자율적 예술이 그 최종단계에서 터부화나 물신화에 이르기보다 자유의 상태, 意識적으로 제작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의 상태에 접근하게 된다는 경험입니다.

(...) 귀하는 유희와 가상을 예술의 요소들로서 논하십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째서 유희가 변증법적이면서 가상은 그렇지 못한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귀하가 오틸리에1)에게서 구제하셨고 미뇽과 헬레나는 그러한 은총을 받지 못했던 그 가상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토론은 순식간에 정치적인 토론으로 변전합니다. 왜냐하면 귀하가 기술화와 소외를 (충분한 권리를 갖고) 변증법적으로 사유하면서, 객체화된 주체성의 세계에 대해서는 그러한 변증법적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영화관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직접적으로 어떤 성취를 기대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다시 말해 레닌의 말에 따르면 예술작품에서 귀하가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 영역에 귀속되는 변증법적 주체들로서의 지식인들에 관한 이론을 통해서 밖에는 달리 이룰 수 없는 어떤 성취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직접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또한 저는 귀하와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적인 것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첨언하자면 기술복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예술작품 자체의 ‘자율적’ 형식법칙의 실현을 통해서입니다. (...) 하지만 자율성, 즉 예술작품의 사물적 형식은 예술작품의 마법적 요소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관의 사물화가 아주 구제 불가능한 것이 아닌 것처럼, 위대한 예술작품의 사물화도 마찬가지로 구제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 둘(=영화관과 위대한 예술작품) 중의 하나를 다른 하나를 위해 희생시키는 것은 낭만주의적입니다. 개성을 그에 속하는 모든 마법적 속성들과 함께 보존하려는 부르주아적 낭만주의이거나 아니면 역사적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권능에 대한 맹목적 신뢰 속에서 자행되는 무정부주의적인 낭만주의입니다. 후자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자체가 부르주아적으로 생산된 프롤레타리아트일 뿐입니다. 저는 이 논문이 어느 정도는 두 번째 낭만주의의 경향을 띠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하는 예술을 그것이 터부시 해온 구석들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로써 귀하는 그와 함께 도래하는 야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 말고 누가 귀하와 함께 그러한 야만을 더 두려워하겠습니까?). 귀하는 귀하가 두려워하는 그것을 일종의 전도된 터부화로 고양시킴으로써 해결을 도모하려는 것 같습니다. 영화관의 관객들이 터뜨리는 웃음은, 내가 이미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얘기했고 그가 귀하에게 틀림없이 얘기했을 테지만 결코 선하고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열악한 부르주아적 새디즘으로 가득찬 웃음입니다. 스포츠에 대해 토론하는 신문배달 소년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내게는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결국 정신분산[=오락]의 이론도 저한테 그것이 충격적 유혹으로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을 주지 못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오락을 필요로 할 정도로 더 이상 피곤하지 않고 더 이상 어리석게 되지 않도록 조직될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렇습니다. 다른 한편 이를 테면 테스트[=시험] 개념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 속의 관행들과 같은 개념들은 거의 존재론적으로 주장되는 듯이 보이고 터부적 기능을 갖는 듯이 보입니다. 그에 비해 아우라적 성격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성격은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고 그것도 물론 가장 우려할 정도로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소한 것 하나를 지적하자면, 반동적인 자가 전문적 지식을 갖고서 채플린의 영화 앞에서 아방가르디스트로 변모한다는 것은 내게는 전적으로 낭만적 사고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크라카우어가 좋아하는 그 채플린을, “모던 타임스” 이후에도, 저는 아방가르드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제가 요구하는 것은 보다 더 변증법적인 사유입니다. 한편으로 자기 스스로의 기술을 통해 점점 더 계획된 예술작품으로 변해가는 ‘자율적’ 예술작품을 변증법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실용예술을 그것의 부정성에서 더욱 더 변증법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귀하의 논문에서 그러한 부정성은 분명하게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영화자본’과 같은 비교적 추상적인 카테고리들로 지칭되고 있을 뿐 내적으로, 즉 내재적 비합리성으로서, 끝까지 추적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2년 전 언젠가 노이바벨스베르크(Neubabelsberg)의 [영화] 제작소에서 하루를 보낼 때,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진 것은 귀하가 강조하는, 몽타주를 위시하여 진보적인 요소들이 실제로 미미한 정도밖에 관철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도처에서 미메시스적으로 현실이 유치하게 구축(構築)되고 이어서 ‘복사’되고 있었습니다. 귀하는 자율적 예술의 기술성을 과소평가하면서 종속적 예술의 기술은 과대평가하고 계십니다. 그 점이 바로 요약컨대 저의 주된 이의(異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이의는 귀하가 서로 갈라놓은 극단들 사이를 변증법적으로 매개함으로써만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귀하의 논문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변형되어 쓰이고 있는 브레히트적 모티브들을 완전히 일소하는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 무엇보다 영향연관 - 그 영향연관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 의 직접성에 호소하고 실제적 프롤레타리아의 실제적 意識에 호소하는 일을 일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의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 비해 혁명에 대한 관심 이외의 어떤 것도 더 가진 것이 없으며, 그밖에는 부르주아적 성격의 온갖 비틀린 흔적들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이 점이 우리에게 우리가 수행해야 할 기능을 규정해 줍니다. (...) 혁명의 목적은 불안을 없애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혁명에 대해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불안을 존재론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혁명이 일어나야 하겠기에, 우리 자신도 그 유혹에 쉽게 빠지듯이, 자신이 처한 곤경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화위복을 만들어 내곤 하는데, 그 대신, 인식하면서 혹은 아무런 인식금지 없이 프롤레타리아에게 연대를 지킨다면 그것은 부르주아 관념론이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도 우리와 같은 곤궁에 처해 있으며,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그만큼, 그들 역시 인식을 위해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지식인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갖는 관계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일에 제가 보기에 귀하가 그처럼 훌륭하게 개시한 미학적 토론의 서술이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

옛 우정을 전하며
귀하의 테디 뷔젠그룬트(Teddi Wiesengrund)

 

3. 오늘날 벤야민 사상의 매체철학적 의미

발터 벤야민은 지각의 매체에서 일어나는 심대한 변화를 진단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미학의 자리에 대중매체의 미학이 들어선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문화로 파악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것이며 동시에 기술에 의해서도 규정되어 있다. 예술작품의 미학은 예술의 祭儀 속에서의 침잠을 의미하고, 개별적인 것을 일회성의 아우라적 마법을 통해 거듭 확인하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들은 예술의 “원작”을 전혀 새로운 맥락으로 가져간다. 대중매체의 미학이 예술작품에의 접근가능성을 민주화시키는 동시에 정신분산과 기분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은 개인이 집단의 형상물 속에, 대중적 지각 속에, 철저히 녹아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해방적인 것은 확대와 축소 사이를 오간다. 무의식의 영역을 폭로하는 기술을 통해 가능성들이 극대화되는가 하면(확대), 제작경비와 포맷을 극소화하여 문화적 산물들의 보급이 유리해진다(축소). 셋째 효과를 들자면 복제인데, 이미 예술작품의 일부였지만, 이제 기술을 통해 고양되고 있고 민주화시키는 잠재력을 내포한다.

문화적 코드를 근본적으로 재 코드화하는 이러한 과정을 바라보는 벤야민의 시각은 단지 표면에서만 체념적이다. 이 표면 아래에서 벤야민은 이러한 변화를 어떤 현대의 철학자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지식인의 생산방식에 미치는 결과까지도 그는 고려한다. 벤야민은 이미 책의 종말과 새로운 매체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모델의 위기와 문화적 도구의 변화는 상호 조건 짓는다. 이로써 철학적 미학은 변화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각에 관한 순수학문이 될 수 없고 정치적, 사회적, 기술적 조건들을 내포한다. 문화산업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의 비판이 이윤동기가 모든 정신적 형상물들에 확산되는 것을 비판했다면, 벤야민은 정신적 생산수단들의 사회화가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문화에의 기회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있다. (출전: Frank Hartmann: Medienphilosophie. Wien: WUV 2000, p. 211.)

 

4. 벤야민에서 아우라 개념의 원천: 클라게스

1920년 벤야민은 루드비히 클라게스(Ludwig Klages)에게 1914년 출간된 그의 논문 『꿈의식에 대하여』의 후속작업에 대해 물으면서 그것을 송달 받았다. 완성되지 못한 이 일련의 논문에서 클라게스에게 중요했던 화두는 꿈 내용의 해석이 아니라 꿈 형식이었고, 꿈의 공간과 깨어있음의 공간 사이, 꿈 시간과 깨어있는 시간 사이의 독특한 차이였다. 이 형식 분석은 좁은 의미의 꿈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여러 다양한 계기들을 통해 나타나는 꿈의 정조(情調)(Traumstimmung)에 일반적으로 해당하는 분석이었다. 그 계기들이란 “이를테면 밤의 정적 속에서 마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그 소리가 점차 잦아드는 것을 들을 때, 멀리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볼 때, 소리 없이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볼 때, 여러 해 동안 어쩌면 광풍과 같은 삶을 살다가 고향에 돌아올 때, 또는 반대로 전혀 낯선 곳에 갔을 때, (...) 드물지 않은 경우, 물론 기차 칸 하나에 혼자 앉아 있다는 전제 하에서, 기차여행을 할 때, 예외적 경우지만 완전히 쇠진해 있거나 절망에 침잠해 있는 순간, 큰 고통에 파묻혀 있거나 어떤 마취제를 음용한 뒤 같은 때이다.” (클라게스: 『꿈의식에 대하여』. 전집 3권, 162). 클라게스는 꿈 정조의 세 가지 특성을 강조한다. 첫째는 정서의 수동성인데, 이것은 자신이 받은 인상들에 몰입하는 경우로서, 익숙한 지각형식들을 벗어나거나 폭파해 버릴 때에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상태이다. 둘째는 멂의 느낌인데,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음이 아니라 먼 것의 나타남이란 점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셋째로 순간성의 느낌인데, 이를테면 기차 창문 밖에 휙 하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의 이미지들의 순간성, 다가오는 듯 하다가 이내 지나가 버린 야간열차의 이미지, 흩날리는 이파리 또는 흩어지는 연기, 꺼져 가는 거품, 떨어지는 별 등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순간성 내지 무상함에서 볼 수 있고 또 변함없이 지속하는 것의 이미지들, 수백 년 묵은 고목들이나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피라미드, 아주 오랜 고산지대 등을 마주했을 때 느껴진다.

1922년 처음 발간된 책 『우주창조적 에로스에 대하여』에서 클라게스는 황홀경의 본질을 연구하던 중 그가 “꿈 정조”의 개념과 거의 같은 의미의 개념으로서 “관조하는 의식상태”라고 칭한 것의 특성들을 규명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구별을 하려는 의지를 갖는 관찰자가 먼 것조차도 그것이 마치 가까운 것인 양 다루고, 직관의 이미지를 그가 차례로 분리시켜 측량하는 일련의 부분들로 환치시킨다면, 그에 반해 가까운 물체일지언정 그것을 관찰하는 데 몰두한 자의 시선은 목적을 이탈하여 대상의 이미지에 사로잡힌다. 이 이미지란 그가 경계 지음을 통해 닫아 버리지 않은 어떤 형식의 이미지이고 둘레에 있는 이웃 이미지들 전체를 가리킨다. 관찰대상과 떨어진 간격이라기보다 관찰의 방식이 바로 그 관찰자가 가까운 것에서 그 대상의 특성을 얻는지 아니면 먼 것에서 얻는지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누구도 가까운 것의 성격이 갖는 사물성, 먼 것의 특성이 갖는 이미지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주창조적 에로스에 대하여』, 2판, 1926, 128f.)

원상적으로 관조된 사물들에 작용하는 이 먼 것을 클라게스는 그것들의 “아우라” 또는 “후광(Nimbus)”라고 칭했다. 클라게스가 여기서 뜻한 멂은 무엇보다 태고의 시간적 멂 속에서 나타나는 세계영혼의 멂이다. 관조의 상태는 “‘다가갈 수 없는’ 것, 존재했던 것의 어머니세계로 ‘밀어내’ 거나... ‘이미 오래 전에 죽어없어진 것들의 ’정령‘들을 다시 불러낸다.” “세계의 운명은 명징한 순간에 현재 순간에 다가온다. 공간적으로 먼 것들과 시간적으로 먼 것들 속에서 이미 일어났고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은 그 빛과 의미를, 제아무리 민속하게나마, 흩어지는 이미지로부터 얻는다.” (126)

이 이미지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세계의 영혼을 무시하는 일이고 인류의 몰락을 재촉하는 일이다.

“중세에서 이미지에 대한 적대감은 중세가 위선적으로 그 내부에서 키워왔던 것으로서 인간과 대지의 영혼 사이의 맥락을 끊어버리려 했던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자마자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행각을 한 뒤에 인간은 자신이 이전에 행해온 일, 즉 이미지의 다양한 형상에 엮어져 있음과 삶의 무한한 충만함을 세계를 떨쳐버리는 정신성의 고향 없는 군림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완성시킬 뿐이다. ... 우리는 옛 종족들이 자연을 실험들을 통해 엿본다든지 자연을 기계에 노예로 종속시킨다든지, 간계를 써서 자연을 자연 자신을 통해 무찌르는 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었다. 이제 그 말에 덧붙이자면, 그들은 그것을 흉악무도한 짓으로 기피했었다. 숲과 샘, 바위와 동굴은 그들에게는 성스러운 삶으로 가득 찬 존재였다. 높은 산의 꼭대기에서 신들의 소나기가 불어왔고 (‘자연에 대한 느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산을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뇌우와 우박이 위협하거나 축복하듯이 전장의 게임에 개입했었다. 그리스인들은 물 위에 다리를 놓으면, 그들은 강의 신에게 인간의 오만함을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제물을 바쳤었다. 나무를 모욕하는 일은 옛 게르마니아에서는 피로 보속을 받았다. 지구의 흐름들에 낯설어진 현대인은 이 모든 것을 유치한 미신으로 치부한다. 현대인은 해석하는 환상들이 내적 삶의 나무에서 흩날리는 꽃들이었다는 점을 잊고 있다. 이 내적 삶이 그의 모든 학문보다 더 깊은 앎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을 결합시키는 사랑이 지닌 세계를 창조하는 직조력(織造力)에 대한 앎이 그것이다. 바로 그 사랑이 인류 속에서 다시 성장할 때에만 어쩌면 정신이 친모 살해를 하듯 인류에 가한 상처가 아물 수 있을 것이다.” (클라게스: 『인간과 대지』. 22f.)

벤야민은 1926년 바흐오펜(Bachofen)에 대한 어떤 책을 서평할 때 클라게스의 이 엄청난 몰락의 예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는 “이 위대한 철학자이자 인류학자”가 “주어진 ‘기술적’, ‘기계화된’ 세계상태”를 남김 없이 매도하는 것을 비판하였고 그러한 매도의 태도가 생겨나게 된 신학적 핵심과 엄밀한 논쟁을 벌일 필요성이 있음을 숄렘(G. Scholem)에게 알렸다. 클라게스와 그의 이미지 구상과의 대결은 아도르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벤야민에게는 그 자신의 입지와 변증법적 이미지의 구상을 밝히기 위해 30년대에 시급한 사안으로 비쳤다.

1926년 발표한 책 『파리의 농부』에서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은 현대의 신화를 분명하게 요구하는데, 이 아라공이 벤야민에게 클라게스의 몰락의 예언에 대한 긍정적이고 현대적인 짝으로 작용했음이 틀림 없다.

(...)


출전: 롤프 뷔거스하우스(Rolf Wiggershaus): 프랑크푸르트 학파(Die Frankfurter Schule). Munchen: dtv 1988. (1판: 1986, Munchen: Hanser Verlag), S. 224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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