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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LEE Min”
흔들리는 시각, 메타_아이덴티티展

 

글.김현진(경기문화재단 모니터링 비평가)

 
 
 


 

웨이거트 Weigert는 정체성을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각 각의 타인과 그들 자신에게 그것을 통하여 전하는 레테르, 이름, 그리고 범주들이다. 또한 정체성은 조직화된 사회관계의 맥락에서 상황 지어진 생활과정의 한 단계에서 하나의 유형화된 자기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민은 정체성에 대한 규정된 범주들과 유형화된 자기를 넘어서 무한변신 하는 메타-아이덴티티를 제시한다. 이민은 정체성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 작가적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고민이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로 확대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메타-아이덴티티는 정체성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는 대신 내가 아닌 다른 것, 존재론적 바꾸기라는 흥미로운 존재체험공간을 꾸려낸다. 미로형태의 공간에서 인간단계, 동물단계, 식물단계, 광물단계 각각의 네 개의 방을 통해 이민 혹은 이민이 된 나는 번역되고 변질된다. 정체성의 경계는 네 개의 방 어딘가에서 지워지고 겹쳐진다.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나는 이민이다 I'm LEE Min"라고 쓰여진 붉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찍힌 포스터들이 나부끼고 있다.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포스터 속의 남자가 이민이라고 믿으며 전시장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오프닝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자신이 이민임을 주장한 이 남자는 사실 이민이 아니었다. (그럼) 누가 이민인가? 이것은 메타-아이덴티티의 핵심 문구이자 버려야할 의문이다. 메타-아이덴티티에 의하면, 그 누구나가 이민이며, 이민은 그 누구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로 구조의 네 개의 방에서 나는 이민을 혹은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민은 그것을 잠시라도 잃어버리기를 바란다.

전시 공간의 입구에 들어서면 ‘인트로미러 intro-mirror’라는 거울이 있다. 거울 앞에 서면 내 얼굴의 반영은 사라지며 순간 "You're me!"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거울 앞에 서면 그 누구나 내가 아닌 작가 이민이 되며, 타자 You 는 내 me 가 된다. 작가와 관람객, 타자와 나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나는 포스터 속의 남자가 입었던 "I'm Lee Min" 티셔츠를 자기정체성의 의식 위에 걸치고 커튼 저편의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선다.

인간단계라는 표식이 붙은 첫 번째 방에서는 피곤한 샐러리맨, 장을 보고 가는 주부, 가방을 맨 아이, 지팡이를 짚고 가는 노인의 뒤를 쫓는 장면이 4개의 화면으로 보인다. 익명의 그들의 뒷모습을 쫓는 카메라는 공간, 환경, 타자들과의 관계성에 놓인 각각의 인물을 포착한다. 이어서 한 화면에서 서로 어지럽게 섞이는 네 사람들은 점이 되어 사라진다. 두 번째 방 동물단계에서는 개미, 물고기, 파리, 개의 영상이 나란히 있다. 먹이를 찾는 개미, 물속을 부유하는 금붕어, 더듬거리는 파리, 끊임없이 짖는 개는 이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인트로 거울을 통해서 나는 이민이 되고 그 이민은 노인, 샐러리맨, 주부, 아이가 되고 다시 동물들이 된다.

식물단계의 세 번째 방에서는 이민이 산책하는 길에 놓여 있는 식물들의 30일 동안의 사진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된 사진 아래는 식물이 자라던 곳을 약도로 표시하고 있다. 그것은 식물들이 날짜별로 자라나는 혹은 뽑혀 사라지는 성장, 변화 혹은 사건의 기록이다. 이민의 눈을 따라서 이민이 걸었던 산책길을 약도순서대로 걸으며 식물들의 추이를 살핀다. 다른 편 영상 속에는 길가에 있는 식물에 반응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원래는 화분이 없고 카메라가 있던 자리로 식물은 나중에 합성된 것이다. 이민은 자신의 주변을 살피는 의미에서 자신이 다니는 거리, 동네, 사람들을 기록했으며 식물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관계성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한다.

마지막 방 광물단계에서 이민 자신의 얼굴에 흙이 흘러내리고 흙이 가득 쌓이고 흙이 다시 사라지고 이민의 얼굴이 나타나는 화면의 반복이 진행된다. 화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반야심경의 문구 “비유비무 역유역무(非有非無 亦有亦無)”가 나타난다. 이것은 이민이 메타-아이덴티티에서 던지고 싶었던 화두일 것이다.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에서는 우주만물도 에너지라는 관계망에 의해 연결된 관계의 총체라고 본다. 우주만물에는 관계만 있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 존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당연하게 정체성도 없다. 다만 불교의 유식론에서는 자아정체성에 대해서 기억이라는 관계망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자아정체성은 내가 가진 기억의 총체이며, 내가 다른 사람과 맺은 인간관계망의 총체이기도 하다. 메타-아이덴티티에서 이민이 관찰했던 사람들, 동물들, 식물들, 흙의 기록으로 이민이 보았던 이민이 느꼈던 이민의 기억을 공유한다. 내가, 관람객이 맺은 이민의 기억의 관계망 속에서 정체성은 전이되고 바뀌고 새롭게 형성되기도 한다. 그것은 나의 기억에 따라서 있기도 하며 없기도 하며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나의 기억 속에서 나는 이민인 적이 있었다. I Was LEE Min.